[출향인사] 민변·참여연대 등 사회봉사활동 솔선…김준곤 (법)삼일 변호사

입력 2011-01-14 08:12:02

6년간 은행원 생활 접고 사시 도전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어느 순간에도 김준곤(56) (법)삼일 변호사의 얼굴은 밝다. 변함 없는 웃음 때문에 표정을 통해서는 그의 속내를 알아챌 길이 없다. 기자도 처음엔 '포커 페이스'인 줄 알았다. 수년간을 지켜보면서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과 여유로움을 알고 난 뒤엔 인위적인 웃음이 아니라고 깨달았다. "불행하다고 생각할 땐 주변을 둘러보세요.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요. 사람들은 모두 축복받고 태어난 거예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할수록 삶은 더 불행해집니다"며 그는 다시 함박웃음을 지었다.

김 변호사는 행복을 나눠주기 위해 산다. 살아온 궤적도 자신보다는 남을 위한 부분이 많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들의 모임(민변)→대구참여연대 시민법률학교 교장→반부패국민연대 대구본부 운영위원장→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대구지하철참사 실종자인정사망 심사위원장→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했다.

사회 생활은 외환은행 행원으로 시작했다. 6년간의 은행 생활은 편했다. 업무도 그랬지만 대학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던 아내와 맞벌이를 하면 먹고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주변이 마음에 걸렸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서 남을 위해 뭔가 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다는 심정이었다. 법학을 전공한 그는 "평생의 회한으로 자리 잡기 전에 사법시험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사시 30회에 합격했다.

변호사를 개업하자마자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미 사법연수원에서 노동법 학회장을 자임하면서 관련 분야 공부를 마쳐놓은 상태였다. 노동 관련 변론을 수도 없이 하면서 보람도 있었지만 좌절감도 맛봐야 했다. "민변 변호사는 다른 사무실 수임료의 절반밖에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노동자 가족이 찾아와 '김 변호사는 검사와 판사로부터 찍혔으니 돈이 더 들더라도 다른 변호사를 구해야겠다'고 하더군요. 부당한 판결에 맞서기 위해 돈과 명예까지 희생하면서 변론해왔는데 그런 대접을 받으니 조금 섭섭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천성을 바꾸지는 못했다. 법인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어 한계는 있지만 아직도 사회 약자들을 챙기고 싶다. 필요하면 회사 사람들을 설득해서라도 인지세와 송달료 수준의 수임료만 받고 변론을 한다. 최근엔 공익 문제까지 관심 분야가 넓어져 대구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성서IC 확장 문제 해결을 위해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김 변호사는 청도 중앙초교, 모계중, 대구상고, 경북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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