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박의 작명탐구] 이름을 남긴 역사 속의 큰 인물(白凡 김구)

입력 2011-01-13 14:56:41

'천민인 백정(白丁)에서 백을 따고, 평범함을 뜻하는 범부(凡夫)에서 범

얼마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수십억 원의 개인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모 당대표와의 면담 중, 그 자리에서 백범 김구 선생을 '김구 씨', '그 양반'이라고 호칭하여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김 전 대통령의 평소 화법이 그러하여 유명 인사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자 일제에 의해 나라가 암울한 시대에 민중을 이끌고 지도하신 분이니 선생이라 호칭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된다. 그나마 '백범 씨', '백범 양반'이라 호칭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김구 선생은 1876년 음력 7월 11일 황해도 해주에서 안동 김씨 김순영의 외동아들로 출생하였고, 아명은 김창암(金昌巖)이었다. 그 이름의 성격은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우두머리 기질이 강한 이름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그는 독학으로 9세 때 한글과 한문을 읽을 수 있었고, 유년 시절 양반집 아들에게 심한 매질을 당하자 부엌칼을 들고 대항하는 대담함을 보였다고 한다.

18세 때인 1893년, 동학교도 오응선을 찾아가 동학에 입도한 후 선생은 이름을 김창암에서 김창수(金昌洙)로 개명한다. 그는 18세의 나이로 수백 명의 수하를 거느리는 접주로 임명되었으며, 황해도 동학을 대표하여 대도주를 찾아갈 대표를 선발할 때 황해도 대표자로 선발되었다. 창수라는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책임감이 강하고 관운이 좋은 이름으로 풀이된다.

백범일지에 보면, 선생께서 이름을 김창수에서 김구로 재개명한 것은 안악사건과 105인 사건으로 조선총독부 경찰에 체포되어 종신형선고를 받고 수감되었을 때였다. 이때 창수에서 구(龜)를 구(九)로 고친 것은 '왜의 민적에서 벗어나고자 함'이라고 적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의 끝수라 하여 아홉 구(九)자를 싫어하는 경우가 많지만, 중국에서는 구(九)자를 하늘을 상징하는 수라하여 인간을 다스리는 천자, 즉 황제를 상징하는 고귀한 숫자이다. 항일독립운동에 전념하신 선생께서 속설일지라도 일제를 제압하고자 본인의 이름에 구(九)자를 사용하여 개명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호를 백범으로 작호한 것은 1913년 옥중에서 생각한 것으로, 낮은 지위의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애국심을 가지게 하자는 뜻에서 백정(白丁)의 백(白)과 범부(凡夫)의 범(凡)자를 따서 백범이라는 호를 지었으니 자신의 이름과 호에까지 독립항일의 염원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일생을 오롯이 조국의 자주독립에 투신하고, 독립운동의 한복판에서 민중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이끌었던 백범 김구. 그에게 선생(先生)만큼 어울리는 호칭이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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