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해산물과 조계산 선암사'순천만 갈대숲 등 벌교의 자랑
벌교는 남도여행의 전진기지이자 보급창이다. 여행 일정이 잡히면 맨 먼저 달려가는 곳이 벌교다. 이곳에는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 낙지를 싼 값에 실컷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해 일대와 목포 주변의 섬으로 여행할 때도 이곳에서 해산물 먹을거리를 싣고 떠나야 안심이 된다. 웬만큼 큰 섬이라도 모든 생필품을 비롯하여 생선 횟감 고기들까지 육지에서 반입해야 하기 때문에 섬에서 파는 물건 값은 대체로 비싼 편이다.
#꼬막 낙지 키조개 등 해산물 풍성
벌교는 교통의 요충지여서 인근 지역의 농수산물들이 밀려 들어와 오일장(4일, 9일)이 아닌 평일에도 필요한 것들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그래서 이곳은 관광객들의 해산물 특히 건어물 구입처로 명성이 높다. 벌교를 대표하는 해산물은 꼬막 낙지 키조개를 꼽을 수 있고 계절에 따라 피조개 바지락 등 조개류와 파래 톳 매생이 등 해초도 풍성하다.
예부터 "여수에서 돈 자랑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 말고, 순천에서 인물 자랑 말라."는 말이 있다. 원래 여수는 항구도시인데다 밀수가 성행하여 돈이 많았고, 벌교는 득량만의 참 꼬막 생산 이권을 둘러싸고 건달들이 설친 것도 하나의 원인이긴 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깡다구 기질이 강해 '벌교 주먹'은 알아주었다. 그러나 순천은 구색을 갖추다 보니 인물 좋은 사람이 많다고 하여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친구들끼리 아호를 짓기 시작하면 뒤질세라 너도나도 따라 짓듯이 지역 별 장기자랑 대결이 벌어지자 강진은 양반 자랑, 고흥은 노래 자랑, 장흥은 글 자랑, 진도는 글씨 자랑을 들고 나와 남해 벨트 내의 소도시들이 서로 어깨를 겨루고 있다.
#산수풍광과 명승고적지 벌교의 자랑
벌교가 자랑할 것은 실은 주먹이 아니다. 이 고장이 품고 있는 산수풍광과 명승고적이 바로 자랑거리의 진수다. 크게는 순천에 포함되어 있지만 벌교 주변에는 내세울 것이 아주 많다. 조계산 선암사와 낙안읍성 그리고 순천만 갈대숲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선암사만 해도 그렇다. 태고총림의 대찰인 선암사는 건성으로 한 바퀴만 돌아도 눈과 코가 시원할 뿐 아니라 정신이 맑아진다. 물론 햇볕과 불어오는 바람이 바탕 되어 그렇겠지만 아늑한 절집 분위기에 매료되면 정호승 시인의 말마따나 '선암사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실컷 울지 않아도' 눈물이 절로 나오는 절이 바로 선암사다.
그러고 나서 이른 아침 안개 자욱한 갈대숲 뻘밭 복판에 놓여 있는 나무다리 무진교(霧津橋)를 지나 맞은편 용산 전망대로 오를 일이다. 그러면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 나오는 대대포구의 안개나루가 한눈에 들어온다. 안개 바다에 갇혀 진작 바다는 볼 수 없지만 '무진'이 품고 있는 안개 세상에 푸근하게 안길 수 있다. 그래서 벌교는 주먹의 고장이 아니라 문학의 고장이다.
나는 벌교를 좋아한다. 살고 있는 이 도시에서 출발하면 세 시간 반 쯤 걸리는 그리 가깝지 않은 벌교를 일 년에 서너 차례 들른다. 목적지는 벌교시장이지만 가는 길에 선암사엘 들러 내 영혼에 끼인 먼지와 때를 벗기는 나만의 수행을 한다. 나의 정신세계를 지탱해 주는 이런 도량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이자 은혜인지도 모른다.
#단골집 연포탕과 밑반찬은 가히 일품
선암사에서 읍내로 내려오는 길에 전화를 한다. 벌교시장 안 탁자가 둘뿐인 여자만식당의 광산 김씨 할머니께 인원수를 밝히고 점심을 주문한다. " 탕탕 낙지 한 쟁반하고 연포탕요." 탕탕 낙지는 할머니 집 앞에 있는 대성수산(061-857-5066)에서 건져온 산 낙지를 마늘과 풋고추를 약간씩 넣고 도마 위에서 난도질한 것이다.
일 년에 몇 차례밖에 들리지 않아도 단골 대접을 한다며 낙지 값은 마리당 사온 원가만 받고 연포탕 값만 계산한다. 탕에 이어 나오는 밑반찬의 맛은 가히 환상적이다. 생선 조림, 꼬막과 파래 무침, 미역 줄기와 된장, 황석어 젓갈 등 어느 것 하나 맛깔스럽지 않은 게 없다. 그런데 지난 봄 할머니가 몸이 편찮아 문을 닫았다는데 그 문은 영 열릴 기미가 없다. 이제 벌교에 가도 즉석 탕탕 낙지를 먹을 곳이 없으니 어쩌지.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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