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예총 예술소비운동본부 회원들이 지난 금요일 전시회를 보러 서울에 왔다. 그들을 서울에서 맞이하여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피카소와 모던 아트전', 그리고 서울시립미술관의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을 함께 관람했다. 서울시립미술관 3층 커피숍에서 잠시 쉬며, 전시회장에 붐비는 인파가 부러워 대구는 언제 이런 도시가 되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구에선 전시작품을 관람하기 위하여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일은 별로 없다. 그러나 서울은 표를 살 때도, 입장할 때도, 전시장을 둘러볼 때도 계속 기다려야 하고, 좋아하는 작품을 보기 좋은 위치에서 오래 감상하기도 힘들다. 물론 수도권의 인구가 대구의 7, 8배에 이르지만 그것이 단순히 인구 수에 비례하는 것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이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전시회를 대구에서 열어도 이만큼 관람객이 모일까? 그럴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그것을 시민의식이라든지 문화수준이라든지 하는 말로 정리한다면 서글퍼지기도 하는데, 어쨌든 예술에 대한 이해와 소비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착잡한 심정으로 전시장을 나서며 시공을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선물하는 이 위대한 작품들을 창조한 예술가들이 그냥 놀라울 뿐이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화가들의 열정과 예술 정신일 것이다. 전시회장 벽면에 피카소가 "창조가 있기 전에 먼저 파괴가 있어야 한다. 고상한 취향이란 얼마나 불쾌한 것인가, 그 취향이란 창의력의 적"이라고 한 말이 적혀 있었음을 떠올린다. 그렇다. 창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그 무엇을 파괴해야 한다는 말에 긍정하지 않을 수 없다.
샤갈도 "우리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은 바로 사랑의 색깔"이라고 했다. 사랑의 색깔,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색깔일까? 그런 궁금증도 가지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하나의 색깔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나는 그것을 사랑의 마음으로 칠하는 그 모든 색깔이라고 정의해버리고 싶다. 사랑의 색깔을 가졌기 때문에 샤갈은 또 색채의 시인으로 불릴 수 있었으리라.
하루 동안 세계의 명화를 둘러본 느낌은 기대 이상으로 컸고, 생각할 거리도 많았다. '대구가 문화적인 도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내가 어쩔 수 없는 과제와 '진정한 예술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며, 훌륭한 예술가가 되려면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등. 이에 대한 의문을 '창조, 그리고 사랑'이라는 낱말로 묶고, 생각의 물줄기를 그쪽으로 오래 흘려봐야겠다.
손경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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