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진학 일반고 부럽지 않아요" 특성화고 출신 '고고씽' 3인

입력 2011-01-11 07:21:35

특성화 고교가 주목받고 있다.

한때 '실업계' '전문계'로 불리던 이 학교들은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과 취업을 우선하는 사회 분위기에 힘입어 최근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특성화고 입학생들의 성적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고, 특성화고를 나와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성적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적 시각은 여전히 불편하다.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들이 가는 학교라는 인식이 높다. '이 성적으로 일반고에 갈 바엔…' 하면서도 왠지 선택이 꺼려진다. 그래서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꿈을 이룬 학생들을 만나 봤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얘기했다. 3년 전 일반고에 가지 않고 특성화고를 택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내 꿈은 선박 기관사

"고2 때 두산중공업에 현장학습 갔다가 큰 배의 모습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대학 졸업 후 기관사가 돼서 꼭 대형상선을 타고 싶습니다."

경북공고를 졸업하고 2011학년도 대입 수시에서 목포 해양대학교에 합격한 송기훈(19) 군. 중학교 내신 6%대의 우수한 성적이었지만 과감하게 특성화고를 택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입학 시 전액 장학금을 준다는 말에 끌렸다. 바로 위 형(정훈)이 2년 먼저 같은 학교에 입학한 점도 안심이 됐다.

송 군은 1학년 때부터 '진학'으로 진로를 정했다. 일반고와는 다른 분위기에 휩쓸리면 공부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학교 시험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는데 무엇보다 내신을 중점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학교 수업 이외에 EBS 준비도 열심히 해야 하죠." 이런 노력 덕에 고교 3년 내내 내신이 거의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특히 형이 서울대 공대에 합격한 일은 송 군에게 크나큰 자극이 됐다. 공부를 잘했던 형은 학교 선생님들이 따로 공부를 봐 줄 정도였다. 송 군은 3학년이 돼서는 오후 6시까지 진학반에 있다가 일찍 귀가해 남은 공부를 마쳤다. 2학년 겨울방학 때부터는 교내 독서 동아리에도 참가했다.

3학년 1학기가 끝나자 취업·진학 시즌이 왔다. 친구들이 선생님과의 상담을 거쳐 취업 원서를 쓸 때 송 군은 지원 가능한 대학을 고르고 있었다. 선생님은 한국철도대학, 해양대학교, 경북대 전자전기컴퓨터과 등 5개 중 해양대를 추천해 주었다. 드넓은 바다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기숙사 4년 전액 지원에 학비도 지원해주는 파격적인 조건에도 끌렸다.

"대학에 들어가면 우선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취업 준비에 들어가야죠. 외국어 시험 준비도 열심히 하고요." 송 군은 "요즘 후배들을 보면 입학 성적도 높고 취업에도 적극적"이라며 "특성화고 학생 중 상당수가 일부러 일반고를 택하지 않은 학생들인 만큼 일찍 진로를 정하고 노력한다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취업, 꿈 이뤘어요

"고객님들이 몇 살이냐고 물어보세요."

대구은행 성당시장 지점에는 유난히 앳된 여직원이 있다. 은행 창구를 맡은 지 두 달 된 권미옥(19) 양이다. 권 양은 제일여자정보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지난해 6월, 은행 측으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고 5개월간의 연수를 받았다. "23명을 뽑는데 10대 1 정도의 경쟁률이었어요. 다행히 대회 수상 경력도 있고 자격증이 많아 합격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면접 때도 최대한 밝고 씩씩한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했고요."

일반고 진학이 충분한 성적이었지만 권 양은 일찍 취업한 두 살 위 언니를 따라 특성화고를 택했다.

'성적 안 좋은 아이들이 가는 학교'라는 선입견은 입학 한 달도 안 돼 여지없이 깨졌다. "학교 공부든 자격증 공부든 뭐든지 열심히 하더라고요. 이렇게 저렇게 공부해서 어느 분야에 취업하겠다는 꿈도 분명했어요." 회계금융과 학생인 권 양은 자연스럽게 금융권 취업을 목표로 삼았다.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갖추기 위해 워드프로세스 1급, 컴퓨터활용능력시험 2급, 전산회계 1급, 전산회계운용사 2급 등 다양한 자격증을 땄다. 회계경진대회, 컴퓨터경진대회에도 출전해 상을 땄다. 학교 공부 이상으로 자격증 공부에 매달린 덕분이었다.

남들처럼 일반고에 진학해 대학을 졸업하는 먼길을 돌았다면 금융권 취업이 가능했을까. 권 양은 "특성화고에서는 수업도 실무 위주로 하니까 기업에서도 특성화고 졸업생을 선호한다. 자격증이 일반화 돼 있기 때문에 자기 계발도 열심히 하는 분위기"라며 "일반고에 가지 못한 것을 후회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오히려 고1 때부터 모두가 진로를 결정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취업을 할지, 진학을 할지를 미리 고민할 수 있다. 역할 모델도 가까이 있기 때문에 동기 부여도 강한 편이다. "1학년 때 선배가 대구은행에 취업하는 걸 보고 나도 꼭 합격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권 양은 "은행 창구 일이 힘들 때도 있고 기운이 날 때도 있다"며 "대학 간 친구들보다 4, 5년 빨리 직장인이 됐다는 게 대견하다"고 했다.

◆금형 분야 최고 전문가 될래요

"스무 살이 돼서 꼭 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취업부터 확실히 해 놓으면 대학은 언제든지 갈 수 있잖아요?"

경북기계공고를 졸업하고 지난해 10월 말 광주에 있는 삼성전자 정밀금형개발센터에 취업한 최성준(19) 군. TV, 컴퓨터 모니터 등을 만드는 이 센터에서 연수를 받은 지도 3개월째가 됐다. 일이 많을 때는 오후 10시를 훌쩍 넘기기도 하지만 의욕만은 넘친다. 기숙사 생활이 낯설긴 하다. "학교에선 개인 위주였는데 이곳에선 단체 생활이 주가 되니까 힘든 점도 있고 새롭게 배우는 점도 있어요."

최 군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특성화고를 택했다. 일하는 어머니를 한 해라도 빨리 쉬게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진학보다는 취업으로 길을 정했다. 40대 1의 경쟁을 뚫고 경북기계공고에 특차모집으로 입학한 후, 최 군은 오직 취업 한길만 바라보며 노력했다. 기능훈련대회에 입상하면 대기업 취직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고 여기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2학년 때 금형 실습을 해보니 적성에도 맞았고, 전공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는 선생님의 칭찬을 들었다. 대학 입시에 못지않게 기능훈련대회 준비를 했다. 수업시간은 물론이고 토·일요일에도 학교에 나와 혼자서 실습을 했다. 틈틈이 책도 빌려보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빼먹지 않고 선생님께 물어 해결했다. 이런 노력은 지난해 9월 열린 전국기능경기대회 금형 부문 금메달로 돌아왔다. 최 군은 "많은 학생들이 기능경기대회 준비를 하지만 건성으로 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며 "목표를 이루려면 남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고 했다.

최 군 역시 고교에 입학하자마자 학교 분위기가 생각과 달라 많이 놀랐다고 했다. 특성화고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뒤처지는 아이들의 학교가 아니었다. "진학을 목적으로 하는 아이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해요. 조금 자유스럽긴 하지만 특성화고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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