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블랙 유머

입력 2011-01-10 10:55:22

구소련에서 유행한 농담 한 토막. "도시에는 식량이 있고 농촌에는 식량이 없도록 하는 것은 무엇? 트로츠키적 좌 편향이죠/ 농촌에는 식량이 있고 도시에는 식량이 없게 하는 것은? 부하린적 우 편향/ 도시에도 식량이 없고 농촌에도 식량이 없게 하는 것은? 올바른 당의 노선/ 그러면 도시에도 식량이 있고 농촌에도 식량이 있게 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공포랍니다." 권력자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전형적인 블랙 유머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블랙 유머가 많았다. "뉴욕타임스 서울 특파원 보도. 최근 한국에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치질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치질 전문 병원은 때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 보건 당국의 조사 결과 대학생들이 신문지 1면 좌측 상단 부분으로 뒤처리를 한 것이 치질 급증의 주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보건 당국은 국민소득 증가로 화장지 보급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왜 신문지를, 그것도 1면 좌측 상단을 고집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1980년대 초반 대학교 화장실에서 자주 발견됐다는 낙서다.

이것이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지면 배정 순서가 지금과는 반대였던 당시 신문의 1면 좌측 상단에는 중요하지도 않은 대통령 소식과 함께 대통령 사진이 매일 실렸다. 당시 TV 9시 뉴스가 시작과 동시에 대통령 동정을 내보냈던 소위 '땡전 뉴스'의 신문 버전이었다. 그것을 찢어 '뒤처리'를 하면 대통령 사진에는 뭐가 묻을까? 이런 블랙 유머에는 'DDD'라는 것도 있었다. 이는 당시 보급이 급격히 늘었던 'Direct Distance Dialing'(장거리 자동 공중전화)의 약어였는데 대학생들은 그 말을 이렇게 비틀며 박장대소했다. '대통령 대가리 돌대가리!'

최근 북한의 대남 인터넷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에 김정일 부자를 조롱하는 12행 시가 실렸다. 내용은 김정일 부자 찬양이지만 각 행의 첫 글자만 읽으면 "김정일 미친놈" "김정은 개새끼"가 된다고 한다. 이 시는 국내 네티즌의 '소행'으로 알려져 있지만 북한 인민의 생각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시는 다음날 삭제됐지만 여기에 공감하는 북한 주민의 마음까지 삭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풀은 바람보다 먼저 눕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이 시에서 장차 바람보다 먼저 일어날 북한 민초(民草)의 모습을 본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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