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를 보다가 오래 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치료해주었던 할머니들로부터다. 오래 사는 일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무척 고마운 생각이 든다.
"선상님이 오래 사셔야 돼. 선상님이 안 계시면 누가 내 병든 몸을 돌봐주지?" 여든을 훨씬 넘긴 할머니의 이야기다. 뇌동맥류를 수술받은 환자인데 자식들은 서울에서 잘살고 있다고 한다. 자기는 절대로 자식들 신세를 지지 않고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지금 혼자 산다고 한다. "지금 여기가 아파. 괜찮을까? 겁이 나지. 자식들도 같이 살지 않는데 갑자기 죽으면 어떻게 해. 선상님이 책임을 저야 혀. 죽지 않도록. 그리고 내가 살아갈 동안 선상님은 살아 있어야 혀." 그래, 할머니가 다른 병으로 돌아가시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할머니의 머리에 생기는 병은 그래도 내가 살아있는 한 돌보아 드릴 수는 있지 않을까. 그리고 여든이 넘은 할머니보다야 내가 더 오래 살지는 않겠는가. "걱정하지 마십시오.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는 제가 살아있겠습니다." 간신히 할머니를 설득해서 진료실을 나가시게 한다.
수년 전 뇌동맥류 파열로 사경을 헤맸던 덕유산 자락에 사시는 할머니. 남편인 할아버지는 그녀가 약을 타러 오실 때면 언제나 그녀 곁에 서서 멧돼지가 농사를 망쳐서 죽을 지경이라는 푸념들을 하시곤 했었다. 어느 날 할머니가 혼자 병원에 오셨다. 할아버지는 어쨌느냐는 나의 물음에 "영감? 돌아가셨어.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의사 선생님은 오래 사셔야 혀. 영감도 없는데 내가 아프면 누가 돌봐줘." 눈물을 글썽이신다. 이외에도 남편이 등산을 갔다가 추락하여 갑자기 사망한 뇌종양 환자, 남편의 간경화가 악화되어 갑자기 사망한 뇌출혈 환자 등, 그들은 남편도 없는데 자기들이 아프면 누가 돌보아주겠느냐고 나보고 오래 살라고 하신다.
죽음,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달려가고 있는 목표물이 아니던가.
누가 자기의 죽음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겠는가? 나도 그녀들의 남편들 같이 갑자기 죽지 말라는 법이 어디 없겠는가? 누군가는 빨리, 누군가는 조금 늦게 도착할지 모르나 결국 모두가 그 죽음이라는 도착점에 다다를 것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 아니던가. 삶은 적게 살고도 오래 산 자가 있고 오래 살고도 짧게 산 자가 있겠지만 그래도 모든 사람들이 같은 값이면 오래 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에게 "오래 사슈"하고 말씀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타인으로부터 자기의 삶을 죽을 때까지 돌보아달라고 요청받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새해다. 나도 모든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오래 사슈."
임만빈 계명대 동산의료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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