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트위터] 식물 국가인권위 유감

입력 2011-01-08 07:04:45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지난달 10일은 62년째를 맞이한 세계인권선언의 날이었다. 모든 인간이 차별없이 누려야 하는 보편적 실체적 권리를 선포한 인류사회의 경축일. 그런데 이 날 국가인권위원회는 말 그대로 초상집이었다. 인권단체, 언론사, 고교생 등 인권상 수상자들이 수상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었다. 시상식장 밖에서는 인권위 장례식과 촛불집회가 잇달았다.

이러한 사태는 다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이미 지난달 60여 명의 인권위원들이 줄줄이 사퇴하고 300여 명의 법학자와 변호사들이 규탄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한 현병철 위원장은 사퇴하라는 항의들이었다. 현 위원장은 취임 당시부터 인권에 대한 식견과 전문성 부족으로 비난을 자초해왔다.

그런데 이 사태의 심각성은 비단 현 위원장 개인의 자질이나 역량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명박 정부 들어서 인권위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려온 것이었다. 정부는 이미 인수위 시절에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변경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해 3월 행정안전부는 인권위 정원을 21% 축소했다. 안경환 전 위원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는 일갈과 함께 인권위를 떠났다.

현 위원장 체제에서 인권위는 침묵과 방조로 인권을 등져왔다. 용산참사,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야간집회 금지 등 정부에 부담되는 안건들은 죄다 기각했다. 세간의 비판에 대해서는 "독재라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억지'가 현 위원장의 대응이었다. 국회에서는 인권위가 행정안전부 소속이라는 발언으로 스스로 독립성을 부정했다. 이쯤 되면 인권위가 인권보다 정권을 수호해왔다는 개탄이 나올만하다. 그러는 동안 앰네스티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한국의 인권 후퇴를 우려하고 인권 등급 하향을 경고해왔다. G20 의장국이라는 나라의 부끄러운 국격(國格)이다.

오늘날 인권은 민주주의의 바로미터다. 여전히 공권력의 위세가 등등한 우리 사회에서 인권의 가치는 더욱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이 때문에 9년 전 독립기관으로 인권위가 설치됐다. 그러나 현 위원장이 권력의 눈치를 보는 사이 국가와 인권은 사실상 결별을 고했다는 게 사회 일각의 시각이다. 부디 5년짜리 정권과 인권을 맞바꾸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도 인권위를 전문성이 부족한 정치 인사들로 물갈이 하려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인권위는 '식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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