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바람·낙타 방울소리 대신 하늘 맞닿을 듯 아스팔트가 달린다
고대 비단무역을 계기로 하여 아시아와 유럽의 문화를 이어준 실크로드가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중국 중원지방에서 시작하여 중앙아시아 초원을 지나 지중해 연안에 이르는 이 교역로는 실로 웅대하고 복잡다기한 길이다. 실크로드는 이제 지구촌 공생이라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재조명해야 한다.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변신과 함께 대륙의 소통길 실크로드도 천년의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대구작가콜로퀴엄'은 실크로드 주변에 부침했던 여러 문명들을 새로운 감각으로 탐사하고 현재의 변화된 모습들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멀고 먼 그 길을 3번에 걸쳐 탐방하기로 했고 얼마 전 1차 탐사계획을 완료했다. 그 결과물을 참가 회원들의 집필로 지면에 소개한다.
제1편 멀고 먼 사막 길
그곳은 가도 가도 사막뿐이다. 눈부신 모래벌판뿐이고 암산뿐이다. 흙바람이 불면 버스 기사는 속도를 줄이고 헤드라이트를 켠다. 방울 소리 구슬픈 대상이 지나갔을 길엔 이젠 까만 아스팔트가 하늘 맞닿은 곳까지 뻗어있다. 지평선 위로 종일 이글거리던 해가 붉게 부풀리더니 온 사막을 핏빛으로 물들이고 서서히 떨어진다. 땅거미가 내려 상인과 낙타가 지친 몸을 뉘었을 오아시스엔 새로 유정, 철광, 탄광이 발견되어 신도시가 쭉쭉 뻗어 있다.
그러나 그곳은 아직 뜨거운 모래의 땅이고, 모래 속에는 부침한 수많은 문명과 또 그 문명을 일군 주인공들이 미라로 잠들어 있다. 그곳은 풀 한 포기 없는 저주받은 땅이고, '어머니 같은 대지'라는 명제를 비웃는, 조물주가 실패한 땅이다. 구도자만이 모진 고행을 자초하는 뜨거운 모래벌판이다.
실크로드 탐사를 3개년 계획으로 세우고, 그 일차연도에는 서안(西安)에서 난주(蘭州), 무위(武威), 장액(張掖), 가욕관(嘉峪關
), 돈황(敦煌), 하밀(哈密), 선선(鄯善), 투르판, 쿠얼러, 쿠차, 악수, 카슈가르까지 갔다가 우루무치를 경유하여 돌아오기로 했다. 한족들의 문화는 오랜 지배 문화로서 이미 우리들에겐 넌더리나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가 돌아본 감숙성과 신강성은 수많은 이민족들이 문명을 꽃피운 곳이다. 그 민족은 오호(五胡) 즉 흉노족, 선비족, 갈족, 강족, 저족 외에도, 몽골족, 티베트족, 서하(西夏)를 세운 탕구트족, 회족, 위구르족 등 사막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순례한 길은 장장 일만 리에 달했다. 북경에서 서안까지 거리의 거의 세 배가 된다. 그 사막길을 육로로만 고집한 데는 선조에 대해 불초한 후손이라는 부끄러움이 잠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혜초 스님은 우리가 간 길의 수십 배, 아니 수백 배 길을 걷거나 낙타로 이동을 하다가 727년 11월에 쿠차에 당도했다. 아마 쿠차에서 장안으로 돌아왔을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의 여로가 스님의 그것과 똑같은 것이다. 또 쿠차는 고선지 장군이 서역의 맹주로 활동하던 지역이 아닌가. 우리는 『왕오천축국전』이나 고선지 장군의 유적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도 못한, 못난 후손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실크로드는 이처럼 우리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 지금 경주박물관에는 로마에서 만들어져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공예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로만 글라스, 보검 등은 중국과 일본에도 없는 것들이며, 또 신라인들은 서역인을 데려다 왕릉들을 지키게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실크로드의 출발점은 경주다. 우리 조상이 이 실크로드의 대상(隊商) 속에, 혹은 서역으로 가는 사절단 속에 끼어 낙타 방울 울리지 않았을 것이란 상상은 하기 어렵다.
시뻘건 황토물이 흐르던 난주를 벗어나자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형형색색의 붉고 누런 산뿐이었다. 산들은 겉흙이 굳어져서 돌과 같았고, 비가 오지 않으니 깎이지 않아 날카롭고 가팔랐다. 골짜기 깊숙이 새파란 물이 내려가는 곳도 있었다.
거기서부터는 이른바 하서회랑인데, 그것이 돈황까지 이어진다. 즉 돈황까지는 높은 산맥 사이로 좁은 사막이 이어진다. 사막 남쪽은 회색의 기련산맥이 솟아 있고, 북쪽으로 마종산맥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 좁은 띠 같은 사막에 무위, 장액, 주천, 돈황 같은 오아시스 도시들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돈황 서쪽은 거대한 타클라마칸사막이 있어 더 이상 인간의 범접을 막는다.
사막엔 비가 오지 않으니 한나라 때 쌓은 토성이 아직도 말짱하다. 한 무제가 우리나라에 사군을 설치할 때 이쪽에도 사군을 설치했는데, 그때 토성(漢長城)이 수십㎞ 남아 있으니, 2천100년 전의 일이 바로 어제일 같다. 토성 옆 한 휴게소에 들렀는데 토성 밑은 온통 말라빠진 인분 밭이었다. 그 또한 썩는 일이 없으니 한나라 때 것도 있을 거라는 우스운 생각마저 들었다.
천산산맥의 화염산 부근을 보면 산에도 뼈가 있다. 풀 한 포기 없이 해골만 남은 땅, 온통 화염 타오르는 모양으로 병풍 쳐져 있다. 그 천산산맥 먼 산꼭대기에 만년설이 반짝이고, 그 녹은 물이 지하로 흘러와 지상으로 솟은 것이 오아시스다. 미루나무가 높이 솟은 오아시스 촌락을 통과하다 보면 옥수수밭과 목화밭이 펼쳐진다. 목화는 다래 훔쳐 먹기 딱 좋은 시기이다. 이런 밭은 모두 우리나라 논처럼 물을 대도록 관개시설이 되어 있다.
돈황에서 하밀로 가는 일직선 도로는 더없이 무료하지만, 이때 만난 신기루는 사막이 보여주는 마법이다. 먼 사막 한 자락이 아지랑이에 젖어 아롱대더니 끝내는 신기루로 바뀌었다. 섬이 두세 개 떠 있는 조용한 호수. 아마 우리가 충분히 사막 멀미를 느끼거나 사막에 취할 때라야 보여주는 요술이리라. 하루 일여덟 시간씩 차를 타다 보면, 끝없이 스쳐 지나가는 사막의 달콤한 최면에 걸리거나, 그 죽음의 땅 깊숙이 혼자 걸어 들어오라는 강한 유혹을 받는다. 잠에 떨어진 꿈속에서도 점점이 낙타풀만이 확대되어 스쳐 지나갈 뿐이다.
글:박재열(시인·경북대 교수)
사진:박순국 (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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