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사] 김희옥 동국대 총장

입력 2011-01-07 07:22:09

"제대로 된 대학 만들면서 지역과 함께 발전해야죠"

"동국대학교에는 경주캠퍼스가 있습니다. 앞으로 고향을 찾을 기회가 많을 겁니다. 제대로 된 대학, 인재를 배출하는 대학, 평가받는 대학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지역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겠습니다. 그게 제 소명입니다."

지난달 말 법복을 벗고 새해 동국대 총장에 취임한 김희옥(63)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이렇게 포부를 밝혔다. "사회에 기여하는 대학이 진정한 대학의 존재 이유"라는 김 총장은 "제 나름의 교육 경험과 정부 행정 경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바라본 입법 과정 경험 등을 녹여 새로운 시각에서 대학을 경영하겠다"고 했다. 나지막한 목소리에 당찬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지난해 5월 경북대 특강에선 고향 후배들을 만나 이렇게 이야기했다. "어릴 때 왕복 8㎞를 걸으며 등하교를 했지요. 그 저력이 지금의 바탕이 됐고 제 역량이 됐습니다. 걸으면서 생각하고 의지를 다지고…. 우리 고향 후배들은 누구보다 큰 잠재력과 저력이 있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갖고 강한 의지로 노력하세요. 환경 탓, 기회 탓하지 말고요." 자신을 바라보던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을 잊을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 총장은 동국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신문학과 석사를 거쳐 동국대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6년 제1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년에 58명을 뽑던 때였다. 이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대구고등검찰청 차장검사, 사법연수원 부원장,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장을 거쳐 법무부 차관을 지냈고 2006년부터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을 지냈다. 서울대 신문학과 석사과정이 눈에 띈다고 하자 그는 "헌법에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언론에 관심이 많았는데 당시에는 신문대학원이 서울대에만 있었다"며 "다른 세계를 가 보는 것도 아주 좋은 것이다. 법학적 눈이 넓어지고 깊어졌다고 느낀다"고 회고했다.

그는 원칙주의자다. 신념이 확고하다. 법무 차관까지 지냈지만 사형제에 대해 정부 입장과 달리 위헌 의견을 냈다. "생명은 모두 존귀하다고, 그 이상 중한 게 없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한국방송광고공사가 미디어랩(방송광고 판매대행)을 독점하는 규정에 대해서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관으로서 헌법이 담고 있는 합법적 가치와 이념만을 생각했습니다. 헌법재판관 개인의 성향이 어떠한가보다 사건마다 그 사건에서 침해된 국민의 기본권이 무엇인지 따졌습니다. 그리고 그 침해된 기본권을 어떤 헌법적 가치로 판단할 것인가를 바라보면 답이 나왔고요. 저는 그것을 지켰을 뿐입니다."

그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기도 하다. 동국대 총장에 선임된 계기가 재미있었다. 때는 1963년 3월, 동국대에 전교 수석으로 입학한 뒤 대학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그때 김 총장은 이런 말을 했다고 했다. "사법관으로 봉직한 뒤 학교로 돌아와 후배를 지도하겠다." 지난달 14일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이사회가 '만장일치'로 김 전 재판관을 제17대 총장으로 선출한 것도 그의 이런 오래전 다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기자에게 "약속을 쉽게 하지 말고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면 신뢰가 쌓일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고향에 대한 그의 회고가 귀에 쏙 박혔다. "고향에 딸기향이 나는 절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하루 10시간 정도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다 신림동으로 가지만 그때는 전부 독학이었지요. 그때, 그 맑은 공기, 새벽의 평화로움, 차갑디 차갑던 약수, 발끝을 들어 걷던 사람들…. 그런 기운이 모여 좋은 결과를 낳았지요. 그런데 동국대 총장에 내정되고 난 뒤 그 향수가 떠올랐어요. 이제 그 고향을 자주 찾을 수 있겠구나. 그 생각만으로도 마냥 좋습니다."

산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김 총장은 요즘도 고향 사람 몇 명과 뜻을 모아 산을 탄다. 산을 걸으면서 혼자만의 사색에 잠기는 시간이 좋다고 했다. 헌재의 큰 문제도 산에서 정리한 적이 많았다. 김 총장은 1948년 청도 출신으로 청도 금천초교, 경북중·고교를 졸업했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