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 마녀사냥/ 라이프 에스퍼 애너슨/보림

입력 2011-01-06 14:13:20

무지와 편견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

"소년은 무작정 계속 달렸다. 오로지, 저기 북서쪽에서 맑은 하늘을 향해 또렷한 선을 그으며 피어오르는 연기 기둥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기만을 바랐다. 소년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장작더미를 에워싸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미치광이처럼 춤추는 사람들의 무리로부터 도망쳤다. 지난 몇 주 동안 집 밖으로 나설 때마다 어김없이 자신을 향해 타오르던 증오와 적대감으로부터 도망쳤다."

소년은 몇 시간을 줄곧 달려 가슴이 터질 듯하고 눈구멍에서는 쿵쿵 뛰는 맥박과 함께 통증을 느낀다. 팔과 다리는 제 힘보다 더 크고 강한 힘에 내몰리듯 저절로 움직인다. 왜 소년은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마을로부터 미친 듯이 도망치는 것일까? 소년을 이토록 두려움에 떨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라이프 에스퍼 애너슨의 '마녀사냥'을 읽었다. 짧은 이야기 속에 중세 유럽을 뒤흔든 마녀사냥의 본질이 잘 드러나 있다.

공포와 증오와 분노에서 오는 쓰라린 고통으로 간신히 스스로를 지탱했던 소년은 마침내 힘이 다해 쓰러진다. 소년이 목격한 것들은 어린 가슴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충격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그때 소년의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뼈와 근육만 남은 듯 야위었지만, 건강하고 강인해 보이는 남자 한스는 소년 에스벤을 자신의 은신처로 데려가 치료해준다. "사람들이 어머니를 불에 태워 죽였어요!" 몸이 좀 나아지자 에스벤은 한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린 아들과 단 둘이 살던 에스벤의 어머니는 마을의 의사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폐병에 걸린 여자아이의 치료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은 어머니를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치료하기 힘든 중병이라서 거부한 것뿐인데, 마을 사람들은 여자아이가 어머니 때문에 죽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 후 집의 암소 한 마리가 죽자 여자아이의 어머니는 목사를 찾아가서 어머니가 마녀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흘 뒤 어머니는 마녀재판소로 끌려간다.

"사람들이 많은 말을 하는 것은 어쩌면 두렵기 때문일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이 아니라 틀림없이 그래. 두려우면 보호해줄 것이 필요하지. 무엇 때문에 두려운지 모르면 두려움을 막아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해. 뭔가 잘못되면 악마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편이 간단하지. 하지만 악마는 태워 죽이거나 맞싸울 수 없어. 그래서 자기보다 약한 다른 사람을 태워 죽이거나 괴롭히는 거야."

두려움에 사로잡힌 에스벤에게 한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스는 물고기를 잡거나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면서 살고 있다. 그는 에스벤에게 왜 사람들이 마녀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마녀사냥을 지켜보기만 하는지에 대해 말해준다. 그들은 단지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거라고. 누구도 감히 약한 사람의 편에 서고 싶어 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모르쇠 하거나 아니면 가장 강한 집단과 한 패가 되는 법이라고. 그렇게 되면 그들은 힘을 갖게 되고, 온 힘을 다해 그 힘에 매달린다고.

한스와 함께 물고기를 잡고 사람들을 치료할 약초들을 모으면서 소년의 이성은 깨어났고 감각은 날카로워졌다. 소년은 한스의 지식과 행동 방식을 천천히 자기 것으로 배워 나갔다. 그리고 어느 날 한스에게도 어두운 그림자가 덮쳐온다. 악마의 하수인들에게 잡혀가는 한스를 지켜보는 에스벤의 머릿속에 한스와 주고받은 말이 떠오른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마녀 사냥꾼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는.

우리는 겉으로는 차이와 다양성을 외치면서도, 저도 모르게 힘센 다수의 편에 서서 폭력을 행사하곤 한다. 한스는 에스벤에게 묻는다. "만약 네가 선택할 수 있었더라면 말이다. 너는 어디에 있는 어머니를 보는 것이 나았겠느냐? 다른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어머니냐, 아니면 그 바깥, 괴롭히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 끼어 있는 어머니냐?" 당신은 어느 편인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