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국가능력평가' 본격실시, 패러다임 변화
영어 공교육이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초등 영어수업 시수 확대, 영어 회화 전문 강사·원어민 강사 확대가 단기적인 변화라면, 내년부터는 '한국형 영어시험'인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ational English Ability Test·NEAT)'이 본격 실시될 예정이어서 영어 교육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이 시험의 경우 이르면 2016년 수능 영어를 대체하는 시험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 현재 초·중학생과 학부모들은 눈여겨봐야 한다.
하나의 교과목을 넘어 '잉글리쉬 디바이드(English Divide)'라는 말을 낳을 정도로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영어. 말하기, 쓰기 교육으로 급격한 전환이 이뤄지면서 학교 현장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영어 공교육, 체질을 바꿔라
초등학교 4학년과 중학교 1학년 남매를 둔 A(43) 씨는 두 아이의 영어 교육 때문에 고민 중이다. A씨는 두 아이의 영어 회화 학원비 외에도 문법·읽기 수업을 위해 따로 교습소를 보내왔다. 그런데 최근 지인의 권유로 원어민 일대일 방문과외를 받기 시작하면서 두 아이의 영어 사교육비가 총 130만~140만원을 넘게됐다. 그는 "큰 애가 어학연수를 다녀온 같은 반 친구를 부러워하길래 원어민 과외를 결심하게 됐다"며 "한 편에선 영어 실용 능력이 중요성이 높아진다고 하지만, 당장 수능은 문법·독해이니까 양쪽 다 시킬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영어는 단일 교과 중 저학년부터 가장 사교육이 활성화돼 있기 때문에 학생 간의 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과목이다. 영어 교육의 큰 방향은 기존 읽기에서 말하기와 쓰기, 듣기 등 종합적인 실용 구사 능력 위주로 선회하고 있지만 교실당 30~40명의 수업으로는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다. 실제 지난해 말 있은 국가학업성취도평가에서 초등 고학년 영어 교과목의 성취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심각한 잉글리쉬 디바이드를 시사하고 있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영어 공교육 강화이 방향은 영어 격차 해소와 실용 영어 강화로 요약할 수 있다.
초등 3,4학년의 영어 수업시수가 지난해 주당 1시간씩 늘어난 3시간으로 운영된데 이어 올해부터는 5,6학년의 영어 수업 시수가 1시간 늘어난 4시간으로 운영된다. 영어 수업의 절대량이 늘어나면서 영어회화전문강사가 대거 교실에 투입된다. 대구시교육청 경우 올해 100여 명의 영어회화전문강사를 선발, 정규 수업을 담당하게 할 예정이다. 회화 중심의 실용영어 수업도 주2회 이상으로 확대된다. 올해부터 중학교 1학년부터 고1까지 우선 적용 후 연차적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학교 시험에서도 듣기, 말하기, 쓰기 영역을 전체 평가의 50% 이상 반영토록 한다는 목표를 세워놨다.
'공급자'들인 교사들의 영어 수업 능력도 대폭 보강하고 있다.
영어는 여타 교과목 중 유일하게 '수업 능력 인증제(TEE)'가 도입돼 있다. 대구의 경우 2014년까지 모든 영어(전담)교사가 영어로 수업을 진행한다는 목표 아래 우수 영어 교사와 최우수 영어 교사를 선발해 전문성 신장을 지원하고 있다. 대구의 한 초등학교 5·6학년 영어전담교사는 "영어 교과목의 특성상 연수가 많은 실정"이라며 "시교육청 연수 외에도 따로 EBS가 운영하는 자율연수나 영어심화연수, TESOL 연수를 받는 교사들이 상당수"라고 말했다.
시교육청 측은 "오는 3월부터 원어민 1인당 학생 수를 679명으로 대폭 줄이고,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1까지 체험중심의 잉글리쉬 페스티벌 데이를 학교 단위로 운영할 계획"이라며 "뿐만 아니라 영어교사 인증률을 학교평가 및 학교장 경영실적 평가에 반영하는 등 다양한 영어 수업 체질 개선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영어능력시험, 수능 영어 대체할까
영어 교과와 관련한 또 다른 큰 변화는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의 수능 대체 여부다. 2012년부터 NEAT의 본격 도입이 예고된 가운데 내년 중으로 NEAT가 수능 영어를 대체하는 성적으로 활용될지가 결정된다. 대체가 결정되면 도입 시기는 올해 중학교 1학년이 대학입시를 치르는 2016년쯤으로 논의되고 있다.
NEAT는 현행 IBT토플처럼 인터넷을 활용한 영어 평가 방식으로 치러진다.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 등 4개 영역에 걸친 평가가 이뤄지는데, 1급은 대학 2·3학년 수준, 2급은 대학에서 영어가 많이 활용되는 학과에서 필요한 수준, 3급은 기타 실용영어 활용 수준의 학과 공부에 필요한 수준으로 문제가 개발된다. 채점과 결과 분석은 인터넷망을 통해 주관 기관으로 전송한 후 이뤄지게 된다. 최근 대구 11개 고교를 비롯한 전국 170개 고교에서 고2학년을 대상으로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의 시범평가가 치러졌다. 시교육청 조종기 장학사는 "영어 사교육비를 줄이고, 해외 영어 시험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자는 게 도입 취지"라고 밝혔다.
하지만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의 수능 대체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토종 영어시험의 도입에는 공감하지만, 성급한 수능 대체로 인해 자칫 폭발적인 사교육 증가와 해외 조기유학 급증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대구 중등영어교사연구회 서정화(경북고) 교사는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이 수능을 대체할 경우 고1 때부터 목표하는 대학이 요구하는 점수를 확보하기 위해 학생들이 이 시험에 매달리게 될 것"이라며 "미리 원하는 점수를 얻게 되면 대학입시에서 외국어 영역의 부담을 덜 수 있겠지만, 이로 인해 학생들이 교과서와 학교 수업을 뒷전으로 미룰 우려가 크다"고 걱정했다. 대구의 한 영어학원장은 "현재는 소수의 중·고교생들만 토익·토플시험 준비를 하지만,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이 수능에 적용될 경우 대다수 학생들이 이 시험 준비를 위해 학원으로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해법은 또다시 공교육
학교 현장의 교사들은 '영어는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선입견을 버리는 것이 올바른 영어 교육의 첫걸음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구 효명초교 방정선 영어전담교사는 "영어가 중요한 과목임에는 틀림없지만 무작정 외국인 강사가 있는 학원에 보내는 식으로 사교육에 의존해서는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를 볼 수 없다"며 "교직 경험상 영어를 잘 하는 아이는 결국 다른 과목과 마찬가지로 수업 시간에 충실한 아이들"이라고 강조했다.
자녀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욕심만 앞서게 되면 영어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는 역효과만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정부차원에서 수준별·소규모 수업 확산을 통해 영어 공교육을 대폭 강화할 계획"이라며 "영어 공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신뢰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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