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첫 자가유래 연골세포 배양 이식수술 성공
관절내시경의 대가로 꼽히는 열린큰병원 이호규(50) 원장은 정형외과 의사가 된 지 25년이 지났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의과대학부터 인턴, 전공의를 거친 뒤 지금까지 정형외과 의사를 그만두고픈 마음이 한 번도 들지 않았단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아마도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열린큰병원은 무릎 등 특정부위 환자가 전체 환자의 80~90%를 차지할 정도로 전문 병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원장은 지금껏 4만례가 넘는 관절내시경과 인공관절 수술을 해냈다.
◆지역 관절내시경의 선두 주자
당시만 해도 관절내시경은 아주 생소한 분야였다. 동료들과 함께 관절 전문병원을 만들 무렵, 이 원장이 군의관 시절 내시경을 접해봤다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관절경 분야가 맡겨졌다. "대구통합병원에서 군의관으로 있었는데 마침 진단용 관절내시경 장비가 있더군요. 전임자가 신청해 놓고는 한 번 써보지도 못한 장비였습니다. 이후 상주적십자병원에서 근무할 때 관련 책자를 보며 초보적인 수술과 진단을 해 본 것이 전부였습니다." 지역에선 관절경을 아는 사람도, 가르쳐줄 사람도 전혀 없었다.
이처럼 불모지였는데 이 원장은 왜 관절경을 택했을까? "정말 획기적인 수술이었습니다. 관절을 절개하지 않고 작은 구멍으로 진단과 수술까지 할 수 있다니. 출혈도 전혀 없고, 환자의 회복 속도도 엄청나게 빨랐습니다."
그는 1995년 서울 세브란스병원을 찾아가 관절경 연수를 받았다. 연세대 출신이 아닌 연수생 1호였다. 매주 2차례 첫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내려왔다. 그러기를 6개월. 50여 차례 왕복하며 관절경을 배운 셈이다. "한 번은 태풍 때문에 서울까지 갔던 비행기가 대구로 회항했다가 다시 서울로 갔습니다. 하지만 결국 착륙을 못하고 돌아온 적도 있어요."
수술 장면을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를 들고 병원으로 돌아와 화면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수십 차례 상상 수술을 했다. 자신이 수술한 장면도 녹화해서 담당 교수와 함께 의견을 나눴다. 무릎뿐 아니라 어깨, 손목 등 관절 수술은 다 해봤다.
◆환자마다 맞춤형 진료
요즘 그에게 찾아오는 환자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아직 제대로 수술기법을 배우지 못한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나서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환자가 너무 많기 때문. "빠른 수술도 중요하지만 양심적인 진료가 우선돼야 합니다. 조만간 인공관절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오늘 내시경 수술을 해선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는 환자마다 서로 다른 맞춤형 치료를 해준다.
"가령 운동선수의 연골이 파열됐다고 해서 무조건 절개해선 안 되겠죠? 나이와 직업, 생활 방식을 감안해야 합니다. 농촌에서 농사짓는 분들의 경우, 늘 무릎을 쪼그리고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도 함부로 수술해선 곤란합니다."
겨울철 스키 시즌이 끝나고 많이 찾아오는 전방십자인대 손상도 마찬가지다. "다친 뒤 통증과 부기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수술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재활운동을 해서 근력을 올린 뒤에 수술해야 최선의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운동을 즐기는 사람도 많아지고 진단장비가 발전하면서 관절 환자도 크게 늘고 있다. "환자가 늘었다고해서 모두 수술해야하는 건 아닙니다. 초기에 연골판 파열 진단을 받으면 운동으로 근육량을 늘려서 수술없이도 충분히 재활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 가사노동 때문에 안쪽 연골 손상이 많은데 바로 수술해버리면 이후 통증과 기능장애를 겪습니다."
그는 의사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반월판 연골수술의 경우, 5, 6년이 지나면 관절염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연골을 완전 절제하면 진행은 훨씬 빨라진다. 그저 수술만 해놓고 나 몰라라 하는 경우도 많다. "관절 수술은 맹장 수술이 아닙니다. 한 번 수술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죠. 언제든 재발하고 후유증도 있습니다. 꾸준한 후속치료가 꼭 필요합니다."
◆봉사하는 병원 만들고파
이 원장은 열린큰병원 개원 이후 매주 40~60명의 환자에게 관절내시경 및 인공 무릎관절 수술을 한다. 앞서 늘열린성모병원 시절까지 포함하면 관절경 수술만 무려 4만례에 이른다. "예전 연수시절 사체를 갖고 내시경을 배울 때 실습실에 있는 모든 사체의 관절을 전부 열어봤습니다. 덕분에 관절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부러진 뼈를 접합할 때도 관절경을 사용합니다."
연골판 절재술의 경우 이 원장은 5~10분이면 끝난다. 환자도 2, 3일만 입원하면 걸어서 나갈 수 있다. "수술 시간이 짧으면 그만큼 부종이 생기거나 감염될 가능성은 적어지고 회복 속도는 빨라집니다. 수술시간 단축을 고집하는 이유죠."
이 원장은 2001년 지역 최초로 '자가유래 연골세포 이식술'을 성공하기도 했다. 손상된 연골을 실험실에서 세포증식을 시켜 다시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 운동선수나 어린이에게 적용된다. 반월판 연골 이식술도 일찌감치 도입했다.
하지만 최소한 환자의 이해만이라고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양심진료를 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 생각한다. "지금껏 수많은 환자를 봐왔고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 그 중 한 노인 환자가 생각납니다. 수술 후 감염이 발생해 8차례나 수술을 다시 했습니다. 환자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제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죠. 결국 수술은 성공했고 어느 날 진료실로 걸어들어오는 환자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군요. 고마웠고, 제 스스로 뿌듯했습니다."
그는 '봉사하는 병원'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새로운 수술법을 개발하고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정성이 검증된 수술법을 보다 많은 환자들에게 적용하고 싶어한다. "제가 강원도 속초를 좋아합니다. 나중에 통일되면 그곳에 '에미나이(여자아이를 뜻하는 평안도, 함경도 사투리)병원'을 만들고 싶어요. 이름은 그냥 북한 사투리라서 붙여본 겁니다." 그는 병원을 떠나는 직원들에게 "만약 어느 곳에서 '에미나이병원'이라는 이름을 보거든 잊지말고 찾아오라"고 항상 당부한다. 서로 봉사하면서 수익이 나면 의사와 직원 모두 고루 나누는 그런 병원을 만들 생각이다. 그저 해보는 말이 아니라 꼭 이루고 싶다고 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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