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대구 세계육상] 심판의 세계(하)-숨은 심판이 명판관

입력 2010-12-31 15:57:44

선수 감시자이긴 하지만 존재감은 '무색무취'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활약할 예비 심판들이 대구스타디움 회의실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제공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활약할 예비 심판들이 대구스타디움 회의실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제공

심판은 선수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살피는 감시자이긴 하지만 주연이 아닌 만큼 존재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제한을 받는다. 경기장에서 여러 종목 경기가 한꺼번에 열리고, 종목당 투입되는 심판의 수도 10여 명, 일부 종목은 수십 명에 달하는 등 선수보다 많은 수가 경기장에 있는 만큼 자칫 주객이 전도될 수 있고, 관중의 경기 관전에도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심판의 동선은 극히 제한되고, 심판 노출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각종 방안도 마련된다.

◆엄격한 행동 제약

심판으로 경기장에 나서기 위해선 크게 대회 운영, 경기 운영, 심판 내부 규정 등 최소 3가지 규정을 속속들이 숙지해야 할 만큼 철저한 교육과 공부가 필요하다. 트랙경기에서 출발과 관련된 스타터 등 트랙, 도약, 투척 등 전 종목에 걸쳐 경기 운영 방법이나 종목 배경, 규정, 규정 적용 방법, 심판 기본 소양, 실무적 행동 지침을 모두 교육받아야 한다. 심판 관련 규정의 모든 포커스는 선수에게 쏠려 있는데 선수의 부정이나 다른 선수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을 예방하고 막기 위해서다.

일단 경기장에 나서는 순간 심판의 모든 행동은 규정과 약속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경기장에 들어올 때 정해진 순서에 따라 줄을 서야 하고 기록지나 메모장 등 개인 소지품도 옆구리에 보기 좋게 끼고 입장해야 한다. 자칫 어수선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입장 연습도 많이 한다. 경기장에서 심판 역할을 해야 하는 시간(평균 2시간 정도) 동안엔 화장실도 못 간다. 경기장에 들어온 이상 나갈 수 없기 때문에 경기 투입 전 화장실에 들렀다 오는 것은 필수다. 선수나 경기 준비 및 진행에 방해되는 모든 말과 행동을 해선 안 되고, 개인행동도 절대 금지다. 쓰러지지 않는 한 역할이 주어진 지역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대회기간 동안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내년 대회기간에 심판들은 대구은행 연수원에서 집단 합숙 생활을 한다. 오전 9시에 경기가 있는 심판은 2시간 전에 경기장에 와야 하기 때문에 식사, 버스 이동, 준비를 위해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야 할 정도로 일정이 빡빡하다. 오후 경기는 10시 30분에 종료하기 때문에 이때 숙소로 돌아가면 자정을 넘겨야 잠자리에 들 수 있다. 심판진은 오전, 오후조로 나눠 운영된다.

◆'무색무취', 변화하는 심판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최근 심판에게 '투명인간'이 되기를 주문하고 있다. 심판이 주목받으면 주인공인 선수가 돋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심판은 입·퇴장할 때도 경기장을 빙 둘러 운동장과 관중석 사이에 움푹 파인 공간인 모우트(Moat)를 이용한다. 심지어 복장에까지 '칼'을 댔다. 내년 대구 대회 땐 심판의 트레이드마크인 재킷도 입지 않는다. 너무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최근엔 심판들도 운영 요원처럼 무난한 형태와 색상의 폴로 티를 입어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하는 추세다. 운영 요원과는 색상만 달리해 구분한다.

실제 2007년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땐 경기장마다 심판과 운영 요원이 너무 많아 혼란스럽고 보기에 좋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오사카 대회 때 투입된 심판은 800명, 운영 요원은 500명이었다. 오사카 대회의 심판 수는 내년 대구 대회의 두 배에 해당한다. 필요 이상의 심판이 경기장에 있을 경우 관중의 경기 집중이 힘들고, 중계방송 때도 부각돼야 할 선수가 돋보이지 않는 문제도 있다. 이에 따라 IAAF는 '클린 스타디움' 정책의 하나로 심판 수를 줄이도록 대회 조직위에 권고했다.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김준 경기기획부장은 "심판들은 수동 계측뿐 아니라 경기 장비 자동 및 기계화 추세에 따라 최신 첨단 장비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며 "도약·투척 종목의 거리를 측정하는 광파 측정기나 모래 정리 시간을 심판이 직접 할 때보다 30% 정도 줄인 진동 모래 정리기, 영상거리측정기 등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아야 하고, 이를 위해 별도의 교육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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