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김문수·손학규·유시민
2011년은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가 없는 유일한 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가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한 해라고 한다. 그러나 거꾸로 2011년 한 해는 차기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향배를 가르는 정치 행위로 가장 뜨거운 해가 될 전망이다. 2011년 한 해 농사를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2012년 4월 여의도에 입성할 사람이 정해지고, 그 결과에 따라 대선 구도도 요동치게 된다.
대선이 2년이나 남은 시점에서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이란 논의는 어쩌면 무의미하다. 정치는 생물(生物)이어서 너무나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까에 국민들의 관심은 벌써 가 있다. 2년 전 거론되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돼 왔기 때문이다.
대선 행보를 사실상 시작한 인물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김문수 경기도지사, 손학규 민주당 대표,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 등 4명이다. 이른바 '빅4'로 분류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가장 강력한 후보다. 지지율이 요동치지 않고 30%로 높게 고정돼 있다는 점이 무기다. 이 같은 고정 지지율은 지난 6년간 '박근혜 대세론'을 이어준 동력이다. 박 전 대표는 최근 '한국형 복지'를 내세운 사회보장법 전면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복지 이슈를 선점하는 데 성공했다. 또 외교, 안보, 통일, 복지, 문화, 정치, 경제, 사회 분야를 망라한 싱크탱크 격인 '국가미래연구원'을 발족하면서 대권 행보에 성큼 나섰다. '콘텐츠가 없다'는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오래 준비한 결과물로 읽힌다.
박 전 대표의 또 다른 강점은 '박근혜=원칙'이라는 등식이 국민에게 각인됐다는 것이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며 한나라당이 강행한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면서 '박근혜만의 이미지'를 완성했다. 지금의 정치는 곧 이미지 싸움이다. 또 청와대 퍼스트레이디의 경험으로 '준비된 대통령감'이라는 평가도 무시할 수 없다. 국제관계, 복지, 경제성장, 국민통합 등 대통령이 수행해야 할 분야를 체험했고, 이명박 대통령의 모토가 된 '공정한 사회'도 박 전 대표에게 더 어울린다는 분석이다. 드러나지 않지만 각계각층에서 박 전 대표에게 보내는 실질적 지원도 든든한 배경이다.
하지만 '박근혜 울타리'는 여전히 약점이다. 친박근혜계 내부에서도 "박 전 대표와의 직접 소통이 어렵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고, 박 전 대표의 친위부대가 진입 장벽을 더욱 높게 쌓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박 전 대표의 덕만 보려고 한다"며 친위부대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부류도 있다. 지난 대선 경선 때 틀어진 이명박 대통령과의 '보이지 않는 불편한 관계'가 어떻게 정리될지 알 수 없으며, 나아가 친이명박계의 협조를 얻을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항상 제기된다. '얼음공주'의 이미지를 벗고 "광장으로 나오라"는 주문도 들린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대권 행보는 차분하면서도 무게감이 있다. 여의도 입성 후 박 전 대표의 상임위를 분석해보면 외교통상위, 복지위, 기획재정위 등 연임없이 두루 훑으며 '열공 중'이다. 목표가 분명하니 어긋남이 없다. 또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동 직후 박 전 대표는 소셜네트워크 '트위터'를 열고 대중과의 소통에 본격 나섰다. 팔로어만 6만4천 명이다. 친이, 친박계, 여성 의원 등을 가리지 않고 만나 외연을 넓히고 있으며 올해에는 각종 특별 강연, 해외 초청이 잇따르고 있다.
'재정 건전성'을 내세운 경제 정책, '생애 주기에 맞는 맞춤형 복지 서비스'라는 복지 정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박근혜발(發) 정책'도 쏟아져 나올 예정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대선 경선에 나서더라도 지사직은 유지하겠다"고 선포한 그는 이제 본인이 차기 대권 후보군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비해 인지도와 지지도에서 역부족이지만 그만의 무기는 충분해 보인다. 처음으로 재선 경기도지사로 선택돼 행정력을 검증받았고, 3선 국회의원으로 입법 경험과 정치력을 평가받았다.
노동 운동가 출신이라는 점은 그에게 양날의 칼이다. 강점이자 약점인 셈이다. 1970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뒤 그는 민주화 운동으로 제적과 투옥을 반복하다 25년 만에 졸업했다. 4H운동, 야학,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을 거친 그는 1981년 구로2공단 세진전자 노조위원장 출신인 설난영 씨와 결혼했다. 서민과 노동자의 삶이 그에게서 투시된다. 하지만 노동·재야 운동가인 그가 보수 여당의 대권 주자로 나선다는 점을 두고 "섞일 수 없는 두 이미지를 가진 김 지사의 진짜 정체는 무엇이냐"는 의문을 낳고 있다.
김 지사는 이미지는 좋지만 비주얼(visual)은 약하다. 청렴하고 강직한 이미지지만 날카롭고 딱딱한 외모를 가졌다. "'대통령스러움'이 얼굴에 없다"는 얘기가 계속 나온다. 강력한 리더십을 구현하지만 포용의 따스함은 모자라 보인다.
하지만 김 지사에게도 기회는 충분하다. 현재 한나라당 주류 세력인 친이계의 든든한 지원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공신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그가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총리가 나온다"며 청와대를 향해 쓴소리도 꺼리지 않는 강직함도 갖췄다. '박근혜 대세론'이 기우뚱할 경우 유력한 대안이다. 대선의 최대 승부처인 중원(수도권)을 장악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논리에도 막힘이 없다. 대북관계, 안보·외교, 경제 분야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있어 논쟁에서 항상 우위를 점한다는 평가다.
요즘 김 지사는 '젊음을 향한 행보'에도 본격 나서고 있다. 서울, 경남, 부산 등 가리지 않고 '특강 정치'를 진행 중이다. 미·중·EU FTA(자유무역협정),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수도권 규제 철폐 등 자신의 소신을 각 지역에 맞게 맞춤형으로 피력하면서 "도정에 소홀하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가는 곳마다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소셜네트워크인 트위터 팔로어가 1만 명이 넘어섰고 하루 7, 8건 이상의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최근 '국가미래연구원'이라는 싱크탱크를 발족했지만 그는 대선 캠프 성격의 '광교포럼' 출범을 연기시킬 정도로 여유(?)가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
10·3 민주당 전당대회 승리를 통해 중앙정치 무대에 성공적으로 복귀한 그는 자타 공인 야당의 유력 대권 주자이다. 전당대회 전에는 '정세균·정동영·손학규' 순이었으나 최근에는 '손학규·정동영·정세균'으로 호명 순서가 재편된 것은 그의 위상 변화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손 대표의 강점은 민주당이 집권 의지의 표현으로 손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이다. 정권 탈환을 위해 여러 민주당 세력 가운데 손 대표가 가장 근접해 있다는 민주당의 뜻이다. 손 대표도 전당대회 직전 당 대표가 되려는 이유를 묻자 "내가 대표가 돼야 집권 의지를 보여줄 수 있어서"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제 손 대표는 뭔가를 보여 줘야 한다. 최근에 승부수를 띄웠다. 한나라당의 새해 예산안과 쟁점법안 강행 처리에 맞서 '이명박 정권=독재'로 규정하고, 정권 퇴진론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전국 16개 시·도를 돌며 천막을 치고 자는 '노숙 투쟁'이라는 새로운 투쟁 방식을 실행하면서 그는 점점 독해지고 있다.
야권 통합은 또 다른 숙제다. 정권을 뺏긴 사이 여당에선 굵직한 대선 주자들이 등장한 상태여서 민주당으로선 대통령감이 될 만한 사람의 등장이 시급한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인재가 없어 고민이다. 여론조사 결과 손 대표 자신조차도 좀처럼 뜨질 않는 분위기다. 따라서 이 같은 인물난은 야권 제 세력들의 통합을 통한 바람몰이로 극복해야 할 형편에 놓였다. 그러기 위해선 야권 통합을 통해 손 대표가 직접 후보로 등재하거나 다른 후보를 키워야만 한다.
한나라당 출신은 약점이자 기회이다. 민주당 내 호남 주류 세력과 근본적으로 뒤섞이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히 약점이다. 하지만 손 대표 측은 이 같은 약점을 승화시키려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호남 출신 인물로는 대선 승산이 적기 때문에 전대에서 자신이 승리한 것을 적극 강조하고 있다. 그는 특히 "잃어버린 600만 표를 찾아오겠다"며 당내 분위기 변화에 나서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될 때 얻은 표는 1천200만 표이나 2007년 대선 때 정동영 대통령 후보가 얻은 표는 600만 표에 불과했다. 따라서 나머지 600만 표를 회복해 내겠다는 전략이다. 그는 "우리를 지지한 사람들이 실망해서 안 나온 경우도 있고, 충분히 우리를 지지했어야 할 중도층이 한나라당으로 간 경우도 있다"며 한나라당 출신이 오히려 더 장점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
진보 세력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리틀 노무현'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친노 진보 세력에게는 확실한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대척점에 서 있는 당 외부 진보 개혁세력의 좌장이라는 평가도 함께 받고 있다.
유 원장의 가장 큰 장점은 고정된 지지 세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유빠'라고 불리는 지지층은 참여도도 높다. 이들은 나라의 비전에 대해 대안을 갖고 핵심 사안마다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벌여 일반 지지층과 엄연히 구분될 정도이다. 이런 지지층 때문에 유 원장은 실수를 하더라도 지지율이 요동치지 않고 어떤 경우라도 중요한 변수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야권 단일화에 있어서도 그는 최대 변수이다. 총선이나 대선 단일화 흐름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대세가 그에게 기울 수도 있다. 벌써 여의도 정계 복귀가 가능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그도 대선 승리를 위해선 민주당의 지원이 필수이기 때문에 단일화의 큰 흐름에서 거스를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하면서 큰 대과 없이 지내 온 것과 지난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출마 과정 중 유연해진 자세도 그의 강점이자 기회 요인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그의 장점인 지지층이 최대 약점으로도 꼽힌다. 열성적 지지층이 배타적이어서 그 이외의 계층은 무관심, 혹은 강렬한 반대 세력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대선에 출마할 경우 지지층을 확장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이다.
표의 확산성 부족은 유 원장의 미래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서 김진표, 심상정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했음에도 선거에서 패했다. 민주당 표가 결집하지 않은 것이 주요 패인이었다.
따라서 민주당 내 안착도 중요한 숙제이다. 아직도 민주당 내에선 '유시민만은 안 된다'며 비토하는 세력들이 엄존하고 있다. 민주당 내 '안티 세력'과 화해하지 못할 경우 야권 단일화 논의에서마저 배제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와 함께 과거 투쟁적인 정치 이미지를 깨지 못하고 사회 갈등적 요인으로 낙인찍힐 경우 대선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본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는 일이 그에게 가장 큰 과제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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