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은 지켜야 할 합리적 가치를 아는 자랑스런 '保守의 터전'
얼마 전 교육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대구경북을 두고 '수구꼴통'이란 말이 나왔다. 대구경북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일방적으로 매도당하고 폄하당했다는 생각에, 이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기분 나빠했고, 흥분했다. 그 이후 몇 개월이 흘렀지만 '그것뿐'이었다. 대구경북은 결코 수구꼴통이 아니라는 논리적 반박도 별로 없었고,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모습도 부족했다. 지금까지 이 지역 사람들이 그래왔듯이, 이번 역시 한때 '부글부글 끓다 마는 식'으로 종결되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정말 수구꼴통인가?'
매일신문이 2011년 대기획으로 연재하는 '경북의 혼' 시리즈는 대구경북은 정말 수구꼴통인가 하는 물음에서부터 그 실마리를 풀려고 한다. 꼴통이란 저속한 표현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차치하고 수구(守舊)와 보수(保守)의 개념부터 명확하게 정립하는 게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경북대 주보돈 교수가 정의하는 수구와 보수에 대한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수구는 지켜내어야 할 대상과 명분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인데도 앞뒤 안 가리고 현상을 무조건 유지하고자 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 반면 보수는 지키고 가꾸어야 할 보편타당한 대상과 합리적 명분이 있으므로 그것을 포기하거나 놓쳐서는 안 된다는 굳은 입장과 신념을 가리킨다."
주 교수의 수구, 보수에 대한 정의를 바탕으로 대구경북이 수구지역인지, 아니면 보수지역인지 따져본다면 그 답은 금방 나온다. 기득권(旣得權)을 지켜내려는 수구가 아닌 꼭 지킬 것을 지키고 그것을 승화·발전시키는 보수의 땅이 바로 대구경북이다. 대구경북에는 지키고 가꾸어야 할 보편타당한 대상과 합리적 명분이 너무나도 많다는 게 그 이유이다. 다른 지역에 사는 이들은 물론 우리 스스로가 그것을 잘 모르고,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지키고 가꾸어야 할 보편타당한 대상과 합리적 명분을 조금 더 천착해 들어가면 '정체성'(아이덴티티·Identity)이란 단어로 연장해서 생각할 수 있다. 더 심화한다면 '정신'이나 '혼'(魂)이란 영역까지도 넓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몇 명이 함께 사는 가족에게도 가훈(家訓)이란 게 있는데 하물며 대구경북을 합쳐 600여만 명이 사는 이 지역에 정신이나 혼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수천 년을 이어온 역사를 봐도 대구경북에는 지키고 가꾸어야 할 정신이나 혼이라는 게 오롯이 살아 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 자신이 이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가꾸고 보전하는 데 소홀했다.
◆호국·근대화의 주역, 경북
광역자치단체라는 구분에 따라 대구경북이라 일컫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고찰하면 대구는 경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이제부터는 대구를 경북에 포함시켜 간략하게 경북으로 지칭하고자 한다. 각설하고 경북은 다른 지역 사람들로부터 '수구꼴통'으로 매도당해도 될 만한 지역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경북은 이 나라를 지킨 호국(護國)의 보루(堡壘) 역할을 했다. 가깝게는 6·25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를 통해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데 구심점이 된 것이 경북이었다. 낙동강을 비롯해 경북에서 두 달 동안 치러진 치열한 격전을 바탕으로 이 나라는 누란(累卵)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경북 사람들의 호국 정신이 전쟁을 승리로 반전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1894년 갑오의병에서부터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나라와 민족이 고통받고 신음했던 암울한 시기에 경북은 독립운동의 발상지이자 성지(聖地)였다. 독립유공자로 포상된 인물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곳이 경북이고, 가장 많은 자결 순국자를 배출한 곳도 이 지역이다. 경북인의 독립운동과 정신은 세계적으로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더 거슬러 올라가 임진왜란 당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키고 의병활동을 치열하게 펼쳐 왜적(倭賊)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낸 곳도 경북이었다.
일부에서는 의병이나 독립운동을 두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란 지적도 하지만 가진 재산을 다 내놓고, 목숨까지 바쳐 의병을 일으키고 독립운동을 한 것을 본다면 절로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다. 김희곤 안동대 교수는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경북인은 누구보다 목숨을 던져 호국에 앞장섰다"며 "경북인의 자랑스러운 정체성 중 하나로 호국정신을 꼽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나라를 근대화로 이끈 주역도 이 땅의 사람들이었다. '원조를 받는 비참한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대한민국을 눈부시게 발전시킨 것이 경북인들이었다. 이 나라 근대화의 산실(産室)이 경북인 것이다. 모래바람을 뚫고 포스코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을 만든 곳이 경북이고, 세계적인 전자산업의 심장인 구미산업단지를 탄생시킨 곳도 경북이다. '하면 된다'는 정신을 토대로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올라서는 도약대를 만든 것이 경북 사람인 것이다.
호국과 근대화에 이바지한 것과 함께 경북인들이 이 나라에 공헌한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성리학의 본향(本鄕)으로 수많은 인물을 배출하고 학문을 발전시킨 것은 물론 비록 사약(賜藥)을 받을지언정 임금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선비정신을 올곧게 실천했다. 동남아 등 세계 여러나라에서 벤치마킹하려고 하는 새마을운동은 경북의 또 다른 자산(資産)이다.
◆혼이 있어야 미래가 있다!
얼이 빠졌다는 말이 있다. 혼비백산(魂飛魄散)이란 표현도 있다. 뒤집어 얘기한다면 얼과 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얼과 혼, 정신을 제대로 갖고 있으면 개인은 물론 지역이나 민족, 국가는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내고 도약할 수 있다.
'경북이 가면 길이 된다'는 말처럼 우리나라의 성장과 발전의 중심부에 서서 지대한 공헌을 한 경북. 자랑스러운 이 땅에 사는 우리는 지금 경북인으로서 어떤 생각, 마인드를 갖고 있는가. '수구꼴통'이란 매도에 제대로 반박도 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고 애정도 없지 않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경북의 혼' 시리즈를 통해 매일신문은 경북, 경북인이 어떤 존재인가, 그 정체성부터 고찰하려고 한다. 우리 자신이 우리를 모르는데 남이 나를 알아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매일신문은 오늘의 이 나라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경북과 경북인의 땀과 노력을 진솔하게 조명할 것이다. 때론 시대의 선구자로, 때론 시대의 리더로 이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중추적 역할을 한 경북의 자취를 하나하나 더듬으려 한다. 이 같은 작업을 통해서 경북의 정체성과 혼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경북의 혼' 시리즈가 과거만을 지향하는 수구적 내용으로 덧칠되지는 않을 것이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처럼 옛것을 알면서 새로운 것도 알아가는 것을 추구하고자 한다. 경북과 경북인이 걸어온 길을 탐구하면 앞으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 명확하게 보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경북이 지닌 긍정적 요인을 부각하는 데에만 머물지 않고 부정적 모습이나 성향을 극복할 수 있는 처방까지 제시하는 게 '경북의 혼'이 지향하는 바이다.
경북의 인물이나 자연 등에 대한 접근은 수차례 있었지만 경북의 정체성이나 혼에 대한 거시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은 거의 없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경북의 정체성과 혼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가꾸고 승화·발전시켜 나가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지방이 곧 세계인 시대, 경북의 잠재력을 회복하고 다시 웅비하는 경북이 되는 출발점은 자신감의 회복과 긍정적 사고의 재무장에 달려 있다. 이렇게 하려면 정신의 자산인 혼을 찾고 가꾸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소통(疏通)보다는 불통(不通), 상생(相生)보다는 상극(相剋)이 판을 치는 이 시대, 대한민국은 경북에 다시금 커다란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이 나라가 도약하고 발전하는 데 경북이 리더 역할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아이폰 등으로 세계를 석권한 스티브 잡스의 성공 비결은 창의성에 있다. 단순한 손(手) 기술로는 세계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됐다. 정신과 혼이 깃든 것이어야만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경북의 혼을 찾고, 우리가 가야 할 길까지 모색하는 대장정(大長程)을 이제 시작하려 한다. 이 땅에 사는 많은 분들이 경북의 혼을 찾고, 다시금 경북이 대한민국 발전을 이끄는 새로운 시대를 열려는 이 거대한 발걸음에 동참해 주시기를 바란다. 이대현 사회2부장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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