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마치고 사발빚기로 '제2인생' 열고 있는 서규철 씨

입력 2010-12-29 10:29:41

"사발이 지닌 부드러운 선의 포용감, 화려하지 않은 소박함, 그리고 자연 그대로의 흙내음이 좋아 10년 이상 물레질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1999년 대중금속공고 교사직을 정년퇴임하고 사발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제2의 인생을 사는 서규철(65) 씨. 그는 서민의 애환이 질펀하게 녹아있는 사발을 대할 때마다 새로운 삶의 기운을 느낀다.

대구 동구 도동측백수림 건너편에 위치한 그의 공방 향산도예는 130㎡ 규모로 소담하지만 공방 안에는 찻사발에서부터 국사발, 밥사발, 막걸리잔까지 갖가지 사발들이 작업대 위에 정갈하게 놓여있다.

"사발은 제일 만들기 쉬우면서도 가장 어렵기도 합니다." 사발은 오랜 세월 동안 밥과 찬을 담는 용기로 우리 조상들과 함께해 온 그릇이다. 그래서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지만 볼품없는 그릇에 멋을 내야 하는 무기교의 기교 때문에 가장 만들기 어려운 것도 사발이라는 것이다.

그는 학교를 정년퇴임하기 전 여생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 '도자기'를 해보기로 했고 그 이후 전시회나 강습회를 찾아다니며 청자와 백자 등 닥치는 대로 도자기를 배웠다.

하지만 서 씨는 교직에 있을 때 사부였던 단국대 예술대학장인 박종훈 교수를 만나면서 사발에 더 매력을 느꼈다. 그는 방학을 활용해 6학기 동안 전라도 강진의 청자문화연구소에 사발을 배우러 다니기도 했다.

모든 생명은 흙에서 태어나고 사발도 흙에서부터 출발한다. 또 사발은 흙맛뿐만 아니라 불맛의 매력이 함께 있다고 했다. 흙은 순환의 고리에서 보면 시작이고 무수한 혼들이 녹아 있는 경외로움과 장작가마에서 불이 어떻게 휘감느냐에 따라 사발의 질감과 색감이 달라지는 오묘함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발 작품에는 비움의 미학이 있다고 했다. 사발은 담는 그릇이지만 마음만은 비워야 훌륭한 작품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도 한때 공모전 수상에 목적을 두고 욕심과 이기심에 사발을 만든 적도 있다고 했다. 조급한 탓에 마음에 드는 작품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기심으로 가득 찬 마음을 달래려 혼자 산으로 숨어들기도 했어요. 산속에 파묻혀 사심 없는 마음으로 도자기를 빚기만 했지요."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든 작품이 2008년 전국 사발공모전 은상을 가져와 그는 비움의 미학을 체득했다.

그는 흙 재료를 구하는 데도 특별하다. 사발용 흙은 성형과 발색, 불심이 좋아야 한다. 그래서 그는 핑크빛 고령토를 즐겨 사용한다. 그런 흙을 구하기 위해 틈만 나면 트럭을 몰고 경남지역을 누빈다. 합천이나 산청, 그리고 고령 등지를 돌아다니며 흙을 직접 캔다고 했다.

그는 사발을 만들 때에도 일종의 공학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흙은 재료공학이고, 불은 열공학이라는 것. 유약을 바를 때는 비중계로 측정해 농도의 정도에 따라 색감을 체크하고, 불을 땔 때는 세기를 달리해 작품의 차이를 살피기도 한다.

"사발용 재료를 구입하면서 성분분석표를 달라고 합니다. 그 성분이 도자기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서죠. 아마 사람들은 나를 별난 사람으로 볼 거예요."

그는 교직생활 때처럼 도자기 인생에서도 가르침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도자기 공방에 제자들을 모집해 매주 토·일요일에 사발을 가르치고 있다. 제자들은 현재 16명이지만 교수를 비롯해 신부, 의사 등 직업도 다양하다. 그는 제자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서로 말동무가 돼 웃음꽃을 피우는 즐거움도 덤이라고 했다. 올봄 제11회 전국사발공모전에서 그의 제자 6명이 13점을 출품해 전원이 입·특선했다.

2006년 회갑을 기념해 첫 개인전을 가진 그는 이달 20~30일 매일신문사 CU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열고 있고 내년 5월쯤에는 생애 마지막으로 사발 작품을 모아 두 번째 개인전을 계획하고 있다.

그의 꿈은 사발연구소를 만드는 것이다. 사발에 대한 자료와 전시관을 갖추고 훌륭한 제자를 길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는 이런 희망을 갖고 새해에도 힘차게 물레를 돌릴 계획이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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