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학교 운동장이 푸른 잔디로 변해가고 있다. 먼지 풀풀 나는 곳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다가 푸른 잔디가 깔려 있는 운동장에 서 있는 아이들을 보면 왠지 종합운동경기장에서 경기를 하고 있는 멋진 운동선수 같다.
그러나 그 환상 뒤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2009, 2010년 2년 동안 '다양한 학교 운동장 조성 사업'에 대구 지역 28개 학교가 1개 학교당 각 5억 원의 사업비를 받아 인조 잔디 운동장을 조성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2010년까지 모두 59개 학교에 인조 잔디 조성이 마무리된다. 사업명은 '다양한 학교 운동장 조성 사업'인데 왜 인조 잔디를 까는 것일까? 원래 2006년에서 2010년까지 진행하기로 한 운동장 조성 사업은 '인조 잔디 운동장 조성 사업'이었다. 그러나 2007년 인조 잔디 고무 분말 충전재의 유해성 논란과 학부모들의 반대와 갈등으로 마찰이 발생하자 2008년 7월 교육과학기술부와 문화관광체육부 주최로 진행한 공청회에서 사업명을 '다양한 학교 운동장 조성 사업'으로 바꾸었다. 이렇게 사업명을 바꾸면서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학교 운동장 조성 사업'에서 학교 운동장은 다양해지고 있는지가 의문이다.
우리가 어릴 때 뛰어놀던 운동장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고무줄놀이를 하는 아이들, 납작한 돌을 주워 공기놀이를 하는 아이들, 운동장 바닥에 마음대로 선을 그어 큰집 작은집 놀이도 하고, 긴 작대기라도 하나 주우면 운동장을 스케치북 삼아 그렸던 기억이 다 있었을 것이다. 나무라도 한 그루 있으면 '소타기 말 타기' 놀이가 남자 아이들의 단골 메뉴였다. 학교 운동장에서 놀 시간이 없는 것이 요즘 아이들의 신세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아이들의 공간으로 남아있는 유일한 학교 운동장이 인조 잔디로 뒤덮인다는 것은 아이들 스스로 놀이를 구상할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어지게 되는 것이고 '다양한 학교 운동장 조성'이라는 취지에도 전혀 맞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더구나 인조 잔디는 환경의 유해성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인조 잔디 충전재로 사용되는 고무 분말은 보통 폐타이어를 재활용하여 생산된다. 고무 분말은 타이어 구성 원재료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보다 아이들이 경유 유해 물질에 노출되었을 경우 위험성은 더욱 높다. 인조 잔디 운동장에 사용되는 물질들과 충전재는 감염의 원인이 되는 해로운 박테리아뿐만 아니라 비위생적인 여러 가지 물질을 함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조 잔디에는 자정 능력이 있는 자연 미생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화학적인 세척제를 이용하여 소독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학교에서 세척이나 소독을 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인조 잔디에 이용되는 고무와 플라스틱 물질들은 많은 빛의 열에너지를 흡수하여 엄청난 고온을 발생시킨다. 인조 잔디의 표면 온도는 천연 잔디, 모래, 아스팔트보다 20도 정도 높다. 그래서 인조 잔디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화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한 대학 연구에 따르면 일반 성인도 인조 잔디의 표면 온도가 50도인 상태에서 10분 이상 지나면 화상을 입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은 '대박'이 가능한 곳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날부터인가 무엇인가로 싹쓸이되는 나라. 두 집 건너 노래방이 있던 시절이 있었고, 두 집 건너 조개구이집이 있던 시절도 있었다.요즘은 언제부터인가 아이들 놀이터가 푹신한 고무 바닥으로 바뀌어 가고 있고, 학교 운동장이 푸른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왜 이다지도 정신없이 빨리 진행되고 있는가. '이거 문제 있으니 좀 짚고 넘어 갑시다'라고 얘기해도 그냥 달린다. 인조 잔디의 유해성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면 천연 잔디와 비교하기 일쑤이다. 또는 흙 운동장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부각시키면서 흙바닥에 원죄를 씌우기도 한다. 그런데 흙 운동장을 모두 버리고 인조 잔디로 바꾸어야 할 만큼 인조 잔디의 유익성이 크다는 증거도 사실도 없다.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놀이를 하는 주체는 바로 우리 아이들이다.
진정으로 '다양한 학교 운동장 조성 사업'이라면 인조 잔디로 획일화할 것이 아니라 작은 연못도 있고, 놀이와 재미가 있는 공간, 걸어 다닐 수 있는 숲길도 있는 그러한 곳이라야 하지 않을까.
공정옥(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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