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세모다. 사회적 관계가 복잡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도 이맘땐 모임이 잦아진다. 다양한 제목의 송연 회식이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제목과는 달리 모임의 진행 과정은 천편일률적이다. '식'이라는 건, 갖추어진 형식적인 틀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잘못됐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식을 위해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식이란 걸 하지 않나.
우리 치료사 선생님들과 송년 모임을 갖는 날이다. 언젠가 남편이 내게 한 쓴소리가 생각난다. 잘 노는 것도 업무의 연장인데, 소장이 제대로 못 노니까 함께 일하는 치료사들이 얼마나 재미없어 하겠느냐던. 번쩍 정신이 든다. 이렇게 일 년을 마무리할 수는 없다.
오늘 밤 우리는 가벼운 음주와 맛있는 저녁식사 후 볼링대회를 열기로 했다. 에너지가 남아돈다면, 추가로 포켓볼도 치기로 했다. 매달 모이면 밥 먹고 헤어지기 바빴던 사람들끼리 게임을 하자는 것이다. 내가 각종 탁구라켓, 테니스라켓 등을 싣고 다닌다는 걸 모르는 우리 선생님들은 스포츠를 통해 내게 심심한 감정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너무 즐거운 맘으로 송년 모임을 기다리게 된다. 감동이 사라진 나이, 놀 줄 모르는 일 중독이라는 딱지를 가볍게 벗어날 수 있는 송년 모임 만세.
오늘 밤 당신의 연말 모임을 시뮬레이션(simulation) 해보자. 건배가 이어지고, 어쩌면, 주고받는 술잔 속에 눈이 풀리고, 마음도 열려 공식적 만남의 심리적 거리가 좁혀질지도 모른다. 여러 번의 건배, 적당히 술이 돌고 나면, 다음 순서는 틀림없이 노래로 이어질 것이다.
대개의 우리는 남들과 다르지 않게, 규칙과 습관의 테두리 안에서 느끼는 안정감, 즉, 익숙한 삶의 방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올해가 다 가도록 당신이 껴안고 있는 미해결 과제들은 이런 일상의 눈으로는 해결하지 못한다. '아하'라는 통찰은 정신이라는 걸 말끔히 비워두고, 고심하던 문제로부터 훌쩍 벗어나 있을 때 일어난다. 삶의 진실을 깨닫고 엉켰던 실타래가 확 풀려지는 그 통찰의 순간은 아주 단순히 몸을 놀리고 있을 때 문득 일어난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송년 모임에서 일어나는 음주와 가무 속에서 통찰을 경험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훌쩍 털려 넘어가는 술잔과 더불어 묵은 앙금이 가라앉혀지고, 노는 기술이 실종된 일 중독의 사회가 정화되고. 물론 개인 차는 있겠지만 적당량을 섭취하면 불안을 해소해 주는 알코올의 긍정적 측면을 기대해 보자. 망년회, 송년회 어떤 이름이든 거기의 주인공은 한 해를 잘 살아온 바로 당신과 나다. 식을 위해 거기 서 계신 당신이 되지 않기를.
김지애<인지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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