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 해만 해도 우리나라는 중앙정부 예산 299조원과 지자체 수입 80조원을 합한 국가재정 총 379조원의 56%에 해당하는 213조원을 지역을 위해 쓰고 있다. 이 중 40%인 85조원은 수도권에, 나머지 128조원은 비수도권인 지방에 투자된다. 따라서 2천500만 명의 비수도권 지방주민 1인당 512만원이 쓰여지는 셈이다. 이렇게 천문학적인 예산을 활용해 대통령을 위시해서 장관'국회의원'도지사'시장'군수 그리고 공무원 등 수많은 분들이 밤낮없이 지방발전을 위해서 일하고 계신데도, 왜 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는 자꾸만 커지고, '지방보통시민' 들의 삶은 날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지방발전을 위한 장기적이고 일관된 목표와 방향 없이, 모두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정치인의 '인기주의'와 관료의 '보신주의'로 인하여 정부의 지방정책이 잘못된 탓이다. 산업화 시절인 1980년대까지는 국가발전 전략과 지방발전 전략이 일치했기에 지방정책의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지방정책이 달라졌다. 5년 단임의 대통령들이 장기적인 지방발전보다는 '임기 내 치적 쌓기(?)'에 치중하다 보니, 지방정책이 일관성을 상실하였던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지방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고 중소기업청까지 만들었지만, IMF 외환위기의 덫에 걸려 중도 포기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방특화산업(부산 신발'경남 기계'대구 섬유'광주 광산업)정책을 내놓았으나, 결과는 광주의 광산업 정도가 빛을 보았을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세종시'혁신도시'기업도시 계획을 수립하여 기공식으로 대못질까지 했건만, 세상만 시끄럽게 했을 뿐 제대로 추진되는 것은 없다. '5+2 광역경제권' 정책을 들고 나온 이명박 대통령은 총론은 좋았지만 각론으로 파고들지 못한 채,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대표적인 지방사업이 되고 있는 인상이다.
대통령의 '임기 내 치적 쌓기'와 중앙공무원의 '밥그릇 지키기'의 사이에 끼어있는 장관들은 내심 지방이 문제만 안 일으켰으면 하는 것 같다. 장관 자리를 오래 지키기 위해서는 대과(大過)가 없어야 하니, 지방 문제의 본질에는 접근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동남권신공항 같은 골치 아픈 사업들은 가급적 미루고 보자는 식이다. 국회의원들은 중앙정부의 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들이지만, 해당 지자체의 장기적인 지역발전계획과는 상관없이 중앙정부 사업을 자기 지역구에 많이 따오는 '업적 쌓기'에만 분주하다.
돈도 힘도 없는 지방을 위한 애정과 노력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섭섭해할 분들이 아마 지자체장(도지사'시장'군수)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다음 선거를 생각해야 하는 선출직이기 때문에 내실 있는 지방사업보다는 홍보 효과가 큰 국책사업 유치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주민들과 가장 많은 접촉을 하는 지방공무원들은 나름 노고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승진과 정년 보장은 어떤 지역사업과도 바꿀 수가 없다. 지방공무원들은 인사권자인 도지사'시장'군수에게 맹종에 가깝도록 행동해야 승진의 행운을 얻을 수가 있다. 또 정년까지 무사히 공무원 생활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감사(監査)에 지적당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무사안일(無事安逸)이 최고의 덕목이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책 한두 개 바꾼다고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지방정책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1960년대 이후 40여 년간 지방분산정책을 추진해온 프랑스가 2003년 헌법을 개정하여 '프랑스는 지방분권국가이다'라고 헌법 1조에 명시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지방분권국가 선언 같은 것은 기대할 수도 없다.
지금 우리 국민의 절반인 2천500만 명이 비수도권인 지방에 살고 있고, 이들 중 2천만 명 정도가 중소기업'식당'슈퍼마켓'농어업 등에 종사하는 '지방보통시민'들이다. 지방보통시민들의 꿈은 소박하다. 일정한 소득이 보장되는 안정된 직장, 고액과외를 시키지 않아도 대학 진학이 가능한 자녀교육, 몸이 아플 때 믿고 찾아갈 수 있는 병원, 그리고 안전한 밤거리와 버스 타기 편한 도시가 이들의 희망이다.
정치인들의 인기영합적인 헛된 욕심만 없다면, 공무원들의 보신주의적 무사안일만 아니라면, 지방의 분수에 맞는 지방정책과 지방발전은 가능한 일이다. 지방에 투자되는 128조원을 가지고도 충분히 '지방보통시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 지방보통시민의 행복 없이는 결코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홍철칼럼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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