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 년

입력 2010-12-27 08:17:22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은 일곱 커플, 열세 사람이 달콤새콤하게 뒤얽힌 일주일을 한달음에 그리는 숨 가쁜 영화다. 재건축 유혹을 받는 낡은 극장의 외골수 노랑이 주인은 건물 내 커피숍의 만년 배우 지망생인 철부지 여인에 대한 연정으로 냉가슴만 앓고. 극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떠돌이 행상과 닭살 동거 커플은 늘 카드빚에 쫓기며 전전긍긍 버텨간다. 이들에게 카드 대금 독촉 전화를 걸어대는 사내는 전직 농구선수로, TV프로에서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는 맹랑한 소녀와 엮여지고. 그 소녀를 죽자 살자 쫓아다니는 소년의 부모는 헤어져서 따로 산다. 자아도취에 빠진 도도한 정신과 의사인 엄마는 단순 무식한 노총각 형사와 엎치락뒤치락하고, 동성애 취향으로 냉혈한 기획사 대표인 아빠는 다정다감한 남자 가정부와 밀고 당기고. 그 기획사에서 퇴출되어 절망에 빠진 젊은 가수와 은밀한 짝사랑을 태워오던 예비 수녀는 각각 자살을 기도한 끝에 하필이면 그 정신과 병원의 한 병실에 나란히 입원을 하게 된다.

'피드백 시스템을 적절히 활용하나 교통량이 너무 많다'는 아쉬움에서부터, '능숙한 바느질과 빠른 커팅으로 신파의 늪 빠져나오기'라는 찬사에 이르기까지 평론가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그러나 불만에 찬 냉소이든, 만족감에 겨운 미소이든 '그 다음 일주일이 궁금해진다'고 이구동성으로 목소리를 모은다. 그 중 딱한 처지인 떠돌이 행상의 집안을 들추어 보아도, 당장 '내 생애 가장 끔찍한 일주일'일 뿐이다. 그나마 말로만 쪼아대던 카드 대금 독촉은 벌거벗은 폭력으로 들이닥치는데 하다못해 바꾼 품목마다 줄줄이 쪽박만 차고, 뜻밖의 임신 소식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와중에 유괴 자작극에 휘말린 마누라는 똥줄만 태운다.

우연히 주운 지갑을 되돌려준 인연으로 눈물겨운 취업을 했다고는 하지만, 하필이면 천하의 노랑이 극장 주인이라. 그 다음 일주일도 언 발에 오줌 누기 이상의 행운은 기대할 게 못 된다. 다른 커플들도 우연히 찾아온 작은 행운들을 필연적인 행복으로 붙잡으려고 혹은 기억하려고 용쓰고들 있지만, 오십보백보다.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 영리한 감독은 그래서 영화 말미에다 뜬금없이 니체의 경구를 명토 박아 내걸어 두었나 보다. 답답했던 지난 일주일, 끔찍한 이번 일주일 뒤에 설마하니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울 일주일'이 마냥 기다리고 있을 리야. 이 끔찍한 생 앞에서 지레 눈감고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면, 실눈이라도 부릅뜨고서 다시 바라볼 수밖에는. 예나 지금이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지만, 새롭게 뜨인 눈앞에는 아름다운 세상의 실마리를 보여주기도 한단다. 신묘년(辛卯年) 새해가 열린다. 부디 이웃의 모든 사소한 것들을 향하여 귀 쫑긋 세우고 눈 동그랗게 뜨고서,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새롭게 열어가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 년'이 되기를 꿈꾸어 본다.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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