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 "내 자식은 공무원 안시키겠다"

입력 2010-12-24 11:08:57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23일 마지막 수단인 '백신 접종'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 달 가까이 구제역 방제와 확산 차단, 감염 가축 매몰처리에 밤낮없이 나섰던 안동에서는 이날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안타까움과 허탈함에 빠져들었다.

안동지역은 지난달 29일 이후 지금까지 매일 2천여 명의 공무원 등 인력이 동원돼 이동초소 방역과 매몰작업에 나서왔다. 구제역이 안동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구제역 발생 25일을 맞은 이날까지 무려 13만 마리의 가축을 매몰 처리했다. 전체 가축 17만946마리의 75.7%에 달하는 엄청난 수를 매몰했다.

이런 가운데 공무원 1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숱한 공무원들이 쓰러지고 빙판길에 교통사고를 당하면서도 '공무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구제역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앞으로 얼마를 또 그렇게 구제역으로 밤잠을 설쳐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 구제역 전쟁을 치르는 동안 지역에서는 '안동시청 공무원들은 절대 철밥통이 아니다' '공무원들이 이런 일까지 한다면 내 자식은 공무원 안 시키겠다' '그들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들이 퍼지고 있다.

한 공무원은 "모든 시청 공무원들이 피로와 졸음, 정신적인 충격을 견뎌가면서 살처분에 나서 왔는데 결국 백신 접종이 결정돼 허탈하다"고 말했다.

이들을 지켜본 한 축산농은 "살처분 현장의 아비규환을 그대로 지켜보면서 생채기가 났을 공무원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시민활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권영세 시장도 공무원과 가족에게 드리는 서한문을 통해 "안동시 공무원인 당신의 남편, 아내, 부모님은 진정한 공직자이다. 힘든 일에 앞장서고 어려운 일에 솔선수범해 누구도 하지 못하는 일을 거뜬히 해내는 우리 동료직원들을 감히 저는 충성스런 공직자라고 말하고 싶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앞으로 1만6천 마리의 살아남은 안동 한우가 백신을 접종받는다. 이 한우들이 축산명가 안동 한우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안동 축산업 부흥의 살림밑천이 되도록 하는 데 공무원들의 또 다른 역할이 기다린다. 안동시민들이 이들 공무원들에게 박수와 존경을 보내고 있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