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삼성 라이온즈의 훈련구장인 경산볼파크 실내연습장.
이승엽(34·오릭스 버팔로스)의 방망이가 매섭게 돌아가며 '탁~ 탁~' 경쾌한 소리를 냈다. 삼성 김종훈 코치의 토스 볼을 때리는 스윙엔 힘이 실렸다. 이달 13일부터 이곳에서 훈련하고 있는 이승엽은 "계획대로 몸만들기가 잘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오릭스의 유니폼을 입고 새 출발하는 이승엽은 보통 1월부터 시작하던 타격훈련을 2주나 빨리 시작했다. 개인 훈련 대신, 삼성 연습장에서 후배들과 단체 훈련을 선택한 것은 기술 훈련에 중점을 둔 때문이지만,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부활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였다.
2007년 모친상을 당한 뒤 2주간 이곳에서 연습한 뒤 3년 만에 다시 찾은 경산볼파크는 최고의 타자로 길러준, 그리고 정상에 오르기 위해 땀을 흘렸던 곳이다. 이승엽은 월∼금요일까지 5일간 훈련하고 토·일요일 이틀 쉬는 일정으로 일본으로 떠나는 내년 1월 말까지 이곳에서 훈련할 계획이다.
후배들과 함께 훈련을 시작한 그의 표정은 밝았다. 지난달 귀국할 때 만해도 근심이 가득했던 구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요리우리와의 결별 후 거취 결정이 안 된 상태에서 온갖 말들을 보고 들었습니다. 새 팀을 찾으려면 몸값을 낮춰야한다느니, 몸값이 3천만 엔 정도니 하는 기사들을 보면서 자존심도 많이 상했고요."
하지만 이승엽은 새 둥지를 찾은 뒤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했다. "지금까지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젠 좋게 보려고 합니다. 사실 내년 시즌이 기대되고, 설렙니다."
이승엽은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출전 기회가 보장된 만큼 타순에 관계없이 100%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요미우리는 잘할 땐 영웅대접이지만, 슬럼프에 빠지면 견디기 힘든 팀이었다"며 부담감을 털어낸 이승엽은 박찬호와 한솥밥을 먹게 된다는 기대감도 감추지 않았다.
이승엽은 "오릭스가 찬호 형 영입에 나선 것을 미리 알았지만, 진짜 실현될 줄 몰랐다"며 "찬호 형과는 선·후배가 아닌 형·동생 사이로, 둘이 한 팀에 있으면 외로움을 잊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박찬호와 축하인사를 주고받았다는 이승엽은 "찬호 형이 마운드에 서고 내가 1루에 서면 기분이 묘할 것 같다"며 "둘이 같이 히어로 인터뷰를 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또 김병현이 일본 무대에 가세한다는 소식에 대해 "고3때 1학년 언더 투수 김병현에게 팀이 완봉패 당했고, 당시 4타수 1안타에 그쳤다"면서 "찬호 형과 김병현, 김태균, 임창용 등 한국선수들이 모두 모여 밥이라도 한 번 먹어야겠다"고 했다.
지바 롯데를 떠난 뒤 6년만의 퍼시픽리그에 복귀하는 이승엽은 퍼시픽에는 좋은 투수가 많지만 예전에 잘 때렸기에 큰 걱정은 없다고 했다.
등번호 3번에 국가대표 시절 'LEE SY'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일본 평정에 나서는 이승엽은 마지막은 삼성에서 끝내고 싶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나타냈다.
"메이저리그 진출이 안 되면 국내에 남겠다고 해놓고 일본행을 택했다. 당시 기자회견 때 눈물 흘린 건 메이저리그에 가지 못해서가 아니라 회견문에 쓰인 '가족처럼, 아들처럼 대해준 삼성을 떠나'라는 문구 때문이었습니다."
이승엽은 "대구에서 태어나 야구를 했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삼성이 원한다면 대구 팬들 앞에서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아시아의 홈런왕' 이승엽이 기대와 설렘으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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