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약자 외면하고, 부동산 투자는 성공
22일 밤 대구 중구 남산동 옛 적십자 대구병원 건물에는 찬 기운만 돌았다. 지난 3월 초 적십자 대구병원 폐원 후 9개월. 건물 모퉁이에 있는 24시간 편의점만 불을 밝혔을 뿐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옛 병원 건물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주변 가로등이 없었다면 암흑천지였을 병원 건물 내부엔 어렴풋이 보이는 사무용 의자와 냉장고 등이 어지러이 쌓여 있었다. 밤이면 유령 건물로 변하는 옛 적십자 대구병원이지만 대한적십자사 입장에서는 알토란 같은 존재다. 폐원 9개월 만에 병원 부지는 '알짜배기' 땅이 됐다.
대구병원 폐원으로 구성원 3분의 2가 사직해 구조조정 효과도 거뒀다. '의료약자 보호'라는 적십자사 본연의 역할을 저버린 뒤 나타난 결과다.
◆지가 상승과 자동 구조조정
"투기라고밖에 볼 수 없지요. 벌써 이 주변 땅값이 평당 3천만원은 기본인데요."
지난해 9월 부동산 활용의 효율성 제고 및 자산 가치 증대를 위해 국유지를 취득하려 한다는 공문을 시작으로 불과 3개월 만에 부지 매입을 완료한 대한적십자사의 부지 매입은 경제적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내년 8월 현대백화점 개점을 앞두고 인근 땅값은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현대백화점 개점 효과로 땅 매물이 없다는 게 부동산 관계자들의 설명이었다. 관계자들은 이곳의 실거래가가 최소 3천만원을 호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적십자 대구병원이 지난해 말 병원 부지 2천264㎡(685평) 중 기획재정부 땅이었던 국유지 917㎡(277평)를 65억원에 매입할 당시 평당가격은 2천346만원. 시세차익만 벌써 17억5천600만원이다. 일부에서는 "부지가 넓어서 땅값이 그 정도지 소규모 땅이었다면 가격이 더 높을 것"이라고 했다.
구조조정도 자동으로 이뤄졌다. 대한적십자사는 고용승계를 내세워 폐원 직전 적십자 대구병원에 근무하던 직원 53명에 대한 인사조치를 단행했다. 가깝게는 적십자 상주병원으로 멀게는 서울병원으로 인사가 이뤄졌다. 이 중 31명이 일을 그만뒀다. 특히 간호사 직종의 경우 15명 중 간호과장과 원무과 간호사 등 2명을 제외하고 모두 퇴사했다. 사직서를 낸 대다수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기가 불가능한 '아줌마' 직원들이었다.
퇴사하지 않았더라도 힘겹긴 마찬가지. 대구병원에서 외국인 근로자 등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책임졌던 사회복지사 A씨는 인사 조치 이후 현재 야간수납 업무를 맡고 있다. 방사선과에 근무했던 B씨도 건강관리 업무를 맡는 등 원래 보직과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인사 조치 이후 옮겨간 일부 병원에서는 몇 달째 기본급만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체 병원 설립에 미온적
대한적십자사는 대구병원 폐원 이후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공의료 역할을 저버렸다는 비난이 일자 '영주로 적십자병원을 옮기겠다'는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나 최근 열린 적십자 영주병원 설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 용역 결과가 '공공성 등 타당성은 있다. 그러나 수익성은 떨어진다'고 나왔다. 용역을 맡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영주병원을 150~200병상으로 했을 때 '공공성을 갖춰 충분한 타당성이 있지만 기초생활수급자 등이 많아 경제성은 떨어진다'는 결과를 내놨다. 또 '개원 첫해 20억~27억원 정도 적자가 예상되며 적자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과제'라고 했다.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대구병원을 폐원한 적십자사가 과연 영주병원을 설립할지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영주시 관계자는 "시간이 갈수록 적자폭은 줄어들 테지만 영주시의 재정자립도가 높지 않다는 부분이 문제"라며 "이웃한 안동과 비교했을 때 비교 우위에 있다는 확신도 없어 난감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영주시는 적십자 대구병원 폐원 이후 적십자병원이 영주로 오면 무상으로 병원 부지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영주시에 따르면 적십자 영주병원은 BTL(건립 후 임대방식의 민간투자 사업) 사업으로 병원을 신축한 뒤 정부의 지원을 얻는 방안으로 기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지만 대한적십자사의 영주병원 설립 의지는 미온적이다. 내부에서도 "병원은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팽배하기 때문.
적십자사 한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뭐라 입장을 밝힐 게 없다. 내년에 있을 용역 결과와 정부의 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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