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고향인 대구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캐나다에 이민 간 지 2년 만에 고국을 찾았거든요. 딸아이는 겨울방학을 맞았고 저는 꽤 긴 휴가를 냈습니다. 한 가족이 움직이는 비용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부모님 보고픈 마음이 간절했고, 그동안 미뤄왔던 식구들 건강 검진과 아이들 치과 진료 등이 고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했지요.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던 날부터 가족 모두가 들떴습니다. 매일 머리를 맞대고 앉아 한국에 가면 먹어야 할 것들을 수첩에 적었습니다. 떡볶이, 감자탕, 짬뽕, 군만두, 물미역, 돌솥비빔밥, 오징어튀김, 해물탕, 갈치구이, 양념치킨, 양념어묵, 고구마, 돼지갈비 등등 무려 서른 가지나 되더군요. 캐나다에 사는 교포 이웃들은 "와! 좋겠어요. 맛있는 한국 음식 실컷 먹고 오겠네요"라며 부러워했습니다. 한국에 온 우리가족은 동성로와 교동시장, 서문시장을 돌아다니며 구경도 하고 떡볶이와 만두를 먹고 필요한 것들을 샀습니다. 아참! 달성공원에도 갔습니다.
실컷 놀았으니 건강검진과 치과 진료를 받아야겠지요. 그런데 막상 한국에 오니 병원행을 미루게 됩니다. 마음만 먹으면 다음날 당장 검진과 진료를 받을 수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한국과 달리 캐나다에서는 정말 건강검진을 받기 힘듭니다. 저는 캐나다에서 병원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아픈 곳이 있어도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견뎠습니다. 눈보라가 치던 작년 12월, 약간의 열 감기를 앓던 둘째 아이가 자꾸 귀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급성 중이염으로 입원한 적이 있어 걱정이 되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무척 난감했습니다. 아이를 차에 태우고 무작정 집을 나서 집 근처 애프터클리닉(After Clinic:시간 외 진료장소)을 찾아 갔는데 의사가 없더군요. 그래서 다른 곳으로, 또 다른 곳으로 전전하다 2시간 뒤에야 한 애프터클리닉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조금만 아파도 바로 집 근처 병원에 갈 수 있는데 말입니다.
캐나다의 의료시스템은 한국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다른 점은 가정의(Family Dr.)를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의가 있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지요. 의사가 부족한 캐나다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정의 없이 생활합니다. 저희 가족도 2년 동안 가정의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가정의는 치과 진료를 제외한 모든 분야를 담당하는데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하고, 더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 전문의를 소개해줍니다. 하지만 전문의를 만나기까지 최소 한두 달을 기다려야 하는데다 검사와 진단을 받기까지 또 몇 주를 기다려야 합니다. 치료받는 데도 몇 주를 기다려야 합니다.
워크인클리닉(Walk in Clinic: 직접방문 진료장소)이란 곳도 있습니다. 애프터클리닉과 이곳에서는 별도의 예약 없이도 진찰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의가 없는 사람들은 이곳을 이용합니다. 긴급상황일 경우엔 종합병원 응급실을 이용합니다. 그러나 생명에 지장이 없다면 2, 3시간은 기본이고 길게는 5시간 이상을 기다리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캐나다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라면 의료비가 전액 무료입니다. 백만장자든, 거지이든 간에 모두가 기다리면 똑같은 의료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돈이 없어 수술 못 받는 경우나 병 치료 때문에 재산을 탕진하거나, 의료비가 없어 거리로 내몰리는 일은 없습니다. 단순히 이 사실만 보면 캐나다는 '의료 천국'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보다 낙후된 의료시설과 부족한 의료진, 한국보다 5배 정도인 비싼 약값은 '의료 천국'이라는 소리를 무색하게 합니다. 조기 발견과 치료가 중요한데도 진료를 위해 전문의를 기다려야 하는 기간이 너무 길다는 점이 캐나다에서는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긴 기다림 끝에 받게 되는 진료 수준은 실망스럽습니다. 캐나다 응급실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한국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수준 높은 의료진과 의료시설을 극찬합니다.
대구에 첨단의료복합단지가 조성되어 본격적인 인프라 구축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대구가 우수한 의료기술과 산업을 구축해 명실상부한 최고의 '메디시티'로 거듭나면 좋겠습니다.
khj09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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