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 선정을 둘러싼 유치전이 점입가경이다. 가덕도를 신공항 입지로 주장하는 부산에 맞서 경남과 울산, 대구, 경북 등 영남권 4개 광역 자치단체가 '공동전선'을 형성하면서 밀양 유치에 올인하고 있다. 여기다 지역 경제계와 정치권까지 가세하고 있고 유치전이 가열되면서 자존심을 넘어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앞으로 100년간 먹고살 길을 열어 준다'는 동남권 신공항. 침체된 지역경제를 감안하면 어쩌면 당연한 싸움인지도 모른다. 대구를 중심으로 한 밀양 연합군을 이끌고 신공항 유치전쟁에 나서고 있는 박광길(62·사진) 대구·경북·울산·경남 신공항 유치 추진단장을 16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대구벤처센터 내 사무실에서 만났다.
◆동남권 신공항 유치 '성큼'
"밀양이 신공항 입지로 선정될 가능성은 100%입니다. 이변이 없는 한 신공항 선정지로 밀양이 확정적입니다." 박 단장의 말에서는 자신감과 여유마저 묻어났다. 신공항 유치를 둘러싼 판세를 분석해 보면 가덕도에 비해 밀양이 경제성과 안전성, 접근성 등 모든 분야에서 앞서 있다는 설명이었다. "밀양은 공항 건설비용이 가덕도에 비해 저렴할 뿐 아니라 경제적 파급 효과와 안전성 등 모든 면에서 가덕도에 앞서고 있습니다. 결코 삼성상용차처럼 부산에 신공항을 빼앗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질문도 하기 전에 미리 나온 답변. 당황스러웠지만 기분이 좋았다. 신공항 선정이 몇 차례 연기되고 무용론까지 대두되는 마당에 유치단장의 입에서 나온 명쾌하고 시원한 말. '드디어 외국 국적의 비행기들이 맘껏 날아다니는 대구 하늘을 볼 수 있겠구나'하는 기대감에 자연스레 눈길이 창밖으로 향했다. 너무 좋아하는(?) 티를 냈나.
박 단장은 정치적인 해결 노력 때문에 낙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방심을 경계했다. 특히 최근 정부가 신공항 선정지 발표를 내년 3월로 미룬 것은 이 같은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걱정했다. 잠시 비행기를 탔던 기자도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걱정은 최근 수도권 일부에서 불고 있는 동남권 신공항 무용론입니다. 자칫 대구와 부산의 감정싸움으로 비화될 경우 신공항 사업 자체가 무위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더구나 정부가 3월까지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현재 공청회 등 선행 절차가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아 이 같은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현정부의 임기가 끝나가고 있어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해질 수 있다는 점도 박 단장의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내내 '신공항 입지 선정이 되도록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박 단장의 설명에는 절박함과 비장함까지 묻어났다. 그렇다면 '왜 동남권 신공항이 꼭 필요할까' 궁금했다.
"똑같이 세금 내고 국민의 의무도 성실히 수행하고 있지만 왜 지역민들이 해외에 가려면 6, 7시간을 허비해야 하고 인천공항까지 가는데 비용을 10여만원이나 더 들여야 합니까. 동남권 주민들에게 새로운 국제공항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박 단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영남지역에 각종 첨단산업과 지식산업단지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지만 항공의 국제적 접근성이 떨어지면 성공적으로 해낼 수가 없습니다."
◆실패하면 '내 머리를 깎아라'
박 단장은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했다. 침체된 지역 경제를 감안했을 때 반드시 유치에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다. 경북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30여 년간 재난, 교통, 건축 등의 분야에서 일하면서 국제공항의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해 왔던 그였지만 막상 중차대한 일을 맡고 보니 부담감이 상상 이상이었다고 했다.
"처음 유치단장 제의를 받았을 때는 사양할 생각도 있었지만 지역사회에 마지막으로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맡게 됐지요. 지금은 속된 말로 목숨을 걸고 유치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최근 지역사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동남권 신공항 유치 추진에 참여하고 있어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정순천 대구시의원 등 여성 시의원들이 동남권 신공항 유치를 위해 삭발까지 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고는 하늘길을 열겠다는 우리 지역의 염원을 다시 한번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 역시 실패하면 머리를 깎겠다는 자세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신공항 유치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남은 기간 치열한 유치전이 전망되기 때문이다. 어떤 전략들을 준비했는지 설명해달라는 부탁에 동남권 신공항을 조기에 이뤄내기 위한 전략을 간단히 제시했다.
"정치적으로 접근하지 않도록 대통령을 설득하고 대구경북과 경남, 전남·북 등 이해 당사자들을 하나로 묶어내야 합니다." 박 단장은 동남권 신공항이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또 신공항 유치 후의 전략 마련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치에 성공했다고 해서 전부는 아니다. 선정해 놓고 이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실패한 것만 못하다. 실제 우리나라가 더 발전하려면 동남권을 개발해야 합니다. 최근 영남지역에서도 첨단산업과 지식산업단지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만큼 열린 하늘길을 통해 이들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합니다. 동남권 신공항은 지역 개발의 기폭제로 활용해야 합니다."
지역민들의 참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끌어 낼까 하는 문제도 박 단장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다. 아무리 좋은 전략이나 유치단의 노력이 있더라도 지역민들의 힘이 보태지지 않는다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밀양 유치의 당위성을 알리는 홍보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신공항 유치 추진 설문을 받으면서 '왜 대구경북도 아니고 밀양 유치에 우리가 동참해야 하나'라는 항의성 질문들이 많았다. 동남권 신공항 유치에 대한 보다 폭넓은 홍보 활동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 계기였습니다."
지역민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지역민들도 사람답게, 그리고 국민의 평등한 혜택을 누리고, 나아가서는 지역의 발전을 이끌어주는 신공항이 밀양에 반드시 건설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박광길은 누구?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난 박광길 유치위원장은 방재산업분야 전문가다. 계성고와 영남대를 졸업하고 공직에 입문했다. 경주시와 경북도에서 각각 1년씩 근무한 뒤 주로 행정자치부에서 근무한 그는 미국의 재난관리 1인자로 꼽히는 제임스 위트 씨를 만나면서 2000~2002년 1년 6개월간 외국인으로선 처음으로 미국 재난관리청(FEMA)에 파견근무를 했다. 이때부터 재난·방재 분야 전문가로 유명해졌다. 우리 나라에서 방재산업(재난안전관련산업)이란 용어를 처음 만들기도 했다. 2008년 공직에서 떠났다가 올 6월부터 대구·경북·울산·경남 신공항 유치 추진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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