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은 18대 국회가 3년 연속 '폭력국회'를 연출한 날이다. 여야 당직자 500여 명이 뒤엉켜 '패싸움'을 벌였다. 격한 몸싸움으로 유리창과 대형화분이 박살나고 부상자도 속출했다.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목을 조르는 것은 기본이었고, 온몸을 던지는 육탄전도 불사했다.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상영한 조폭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4대강 예산삭감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을 빚다가 벌어진 올 예산국회의 모습이다.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이 "오늘은 모든 정당이 패자다. 한나라당이 언젠가 소수당이 된다면 다수결 원칙에 따라 비폭력 국회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술회는 뭔가 켕기는 속내의 편린(片鱗)일뿐이다. 폭력이 난무하는 국회를 부끄러워하는 것은 당사자인 국회의원뿐만이 아니다. 그것을 지켜봤던 국민도 수치심과 모멸감을 갖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쩌다가 우리 국회가 폭력을 가장 유력한 의사표현 수단으로 장착한 집단이 되었는가?
아직도 그날의 폭력을 두고 책임 공방이 벌어지고 있지만, 여당 때문이라는 주장에 더 수긍이 간다. 원내 과반의석을 차지한 집권세력은 매번 다수결로 포장된 '수(數)의 정치'에 매력을 느끼게 마련이다.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수결이라는 의사결정에 도달하기까지는 절대로 생략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충분한 대화와 토론의 과정이 그것이다. 그래서 대화와 토론을 생략하고 밀어붙인 여당에 더 책임이 있다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인다.
야당이 대정부 전면투쟁을 선언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둘러 속죄양(贖罪羊)을 찾아낸 쪽은 여당이다. "당의 중점예산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반면에 실세들이 예산을 챙겼다"는 내용이 알려지자, 부실 심사의 책임을 지고 정책위의장이 사의를 밝혔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것에 대비해서 제2, 제3의 속죄양도 준비된 듯하다. 이런 와중에도 당대표와 기획재정부장관이 서로 얼굴을 붉히는 등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에서 안쓰러움마저 느낀다.
시간이 지나면 뿔난 야당은 대여공세를 접고 다시 국회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걱정은 정치의 실종과 민심의 이반이다.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너무 빨리 대화와 토론을 포기한 것은 아닌가? 극약(劇藥)에는 필경 부작용이 따르는 법이다. 여당 단독으로 날치기 처리했던 것은 예산안뿐만 아니다. 예산부수법안과 핵심 쟁점 법안 등 모두 41개 안건도 직권상정해서 통과시켜버렸다. 그 부작용을 어떻게 다스릴지 지켜볼 뿐이다.
윤순갑교수(경북대 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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