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의미, 가장 설득력있게 노래한 가수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가 개봉했다. 존 레논 입장에서 올해는 공교롭다. 1980년 12월 8일, 광적인 팬 마크 채프먼이 등 뒤에서 쏜 네 발의 총을 맞고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되는 해이며 비틀즈라는 거함에서 홀로서기를 선언한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또 '쿼리맨'이라는 이름 대신 비틀즈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지 5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런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현재진행형으로 느껴지는 존 레논이라는 이름이 영화관에 걸려있는 일은 반가운 일이다.
'우리'라는 의미를 가장 설득력있게 노래한 유일한 가수로 평가했던 사회학자 '사이먼 프리스'의 말처럼 존 레논은 1960년대와 70년대, '우리'를 비탄으로부터 버티게 해 준 뉴토피아의 상징이었다. 교조적 평론가들이 "비틀즈는 한 사람의 천재와 그의 조수 한 사람, 나머지 두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만큼 존 레논의 위치는 비틀즈 내에서도 절대적이었다. 영화는 그런 존 레논이 겪었던 청년기를 보여준다.
존 레논과 관련한 영화는 존 레논 비긴즈 이전부터 있었다. 2006년 제작된 '존 레논 컨피덴셜'도 있었고 선댄스 영화제 같은 곳에서는 아직도 존 레논과 관련된 영화가 출품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정치적 성향을 가진 다큐멘터리 형식인데 반해 존 레논 비긴즈는 드라마다. 영국 리버풀에서 가난한 부두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고 어머니의 부재를 경험하면서 로큰롤에 심취하기까지 존 레논의 청년시절을 그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존 레논을 또는 비틀즈를 모르더라도 볼만한 영화이며 비틀즈를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가 함께 볼만한 영화기도 하다.
여기서 비틀즈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1965년 가을, 한 중앙일간지에 비틀즈 내한공연 광고가 났다. 비틀즈의 내한 소식도 놀라운 일인데 당시로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던 경복궁 특설무대에서 공연을 했으니, 좌석은 애당초 매진이었고 암표상이 극성이었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고 정작 무대에 오른 팀은 '리버풀 비틀즈'라는 듣도 보도 못한 팀. 영국 리버풀에만 200개도 넘는다는 비틀즈를 흉내 낸 그룹이 무대에 오르자 관객들은 망연자실했고 이내 분노를 쏟아냈다.
환불을 약속하고 겨우 사태를 진정시킨 주최 측은 오히려 자신들은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신문광고를 자세히 보면 아주 작은 글씨로 리버풀이라는 글씨를 넣어 두었던 것이다. 공연 문화가 성숙되지 못했던 시절의 이야기지만 가난했던 시절, 밥은 굶더라도 비틀즈는 보고 싶어했던 한국의 비틀즈마니아들. 그 사람들을 극장 입구에서 만난다면 좋을텐데.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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