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역사가 증명하는 신공항 후보지 밀양

입력 2010-12-16 07:37:01

동남권 신공항 입지를 놓고 그동안 참 말이 많았다. 부산 가덕도와 밀양 하남을 두고 각축전이 치열했다. 또한 양 도시 간 유치전도 뜨겁게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밀양농업발전보존연구회에서는 농민들의 농업 보존을 위해 반대를 주장하고 있고 밀양시 사회단체는 범시민 사회단체 연대를 결성해 3일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시의 치졸한 밀양 흠집내기를 중단하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신공항 입지로는 밀양이 경제적인 면으로보나 입지적인 면으로 보나 그 타당성이 더욱 확실히 증명되고 있다. 밀양이 왜 공항 부지로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1940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밀양에 연합군의 레이더와 폭격을 피하기 위해 비행기 격납고를 건설했다. 이 격납고는 상남면 기산리와 연금리에 아직도 남아있다. 일부 훼손된 부분이 있지만 전면의 아치형 개구부와 곡면형 일체식 구조가 잘 남아 있으며 일제 강점기 당시 밀양지역에서의 일본의 전투 준비 사항을 보여주고 있다.

밀양시 상남면 기산리 1378번지에 있는 '밀양 구 비행기 격납고'는 앞쪽의 밭에 철조망이 처져 있어 접근하기 어려웠고 농사에 필요한 기구 같은 것을 넣어두고 있었다. 또 상남면 연금리 1072번지에 있는 '밀양 구 비행기 격납고'에는 집을 지어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다. 밀양시 상남면 기산리 1378번지와 상남면 연금리 1072번지에 있는 '밀양 구 비행기 격납고'는 인접 마을에 있으며 비슷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양쪽은 산으로 되어 있고 앞쪽은 길게 직선을 이루어 비행기가 확 트인 밀양벌판으로 나가게 되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격납고는 터널형으로 지름 약 13.6m, 높이 약 3.1m, 길이 약 13m의 철근 콘크리트구조물로 두께는 약 25cm 정도이다. 1937년 일본이 도발한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부터 만든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격납고 앞쪽의 넓은 상남 들판에 비행장 활주로를 만들고 적의 레이더와 폭격을 피할 수 있는 배후 구릉지에 전투기를 보관할 4기의 격납고를 건축했다. 일정한 거리를 띄워 4기의 격납고를 짓고 그 사이에 비행기가 이동할 수 있도록 콘크리트 포장길을 만들어 놓았다. 일본 제국주의가 1945년 8월 15일에 태평양 전쟁에 패망하면서 비행장과 격납고는 완성되지 못했다. 지금은 농업용 창고이거나 그냥 방치해둔 상태인 이 격납고는 근대 문화유산으로 등록문화재 제206호로 지정되어 있다.

당시 일본군은 전국에 약 3 군데에 격납고를 건설했다. 그들이 격납고를 지은 곳은 공항 입지조건으로도 손색이 없는 지형지물을 갖추었기 때문인 것으로 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상남면 주민들은 대흥동과 '강탱이' 일대를 지금도 비행장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밀양이 왜 신공항 입지조건으로 합당한지 이러한 역사적 사실로도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는다.

이제 정부는 신공항 건설을 더 이상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지금껏 연구 결과에서 밝혀진 것과 같이 밀양을 신공항 후보지로 하루 속히 지정해 대구경북과 부산, 그리고 경남도민들이 더 이상 반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신공항 결정을 미루는 것은 지역 간 감정의 골만 깊게 하면서 국가 발전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타당성 있는 최적지를 살핀 후 결정할 때 결정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밀양에 신공항이 들어서야 하는 이유는 오랜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고 여러 측면에서 최적지로 입증되고 있는 만큼 정부는 밀양을 신공항 예정지로 결정해야 할 것이다.

장현호(밀양향토사연구회 사무국장 장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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