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벅지뿐인 다리가 왜 이리도 아픈지…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딸을 가슴 깊숙이 묻었다고 생각했건만 최병현(가명·57) 씨는 매년 딸 아이의 나이를 계산한다. "올해 서른한 살일 텐데, 우리 예삐가…."
최 씨와 아내 김명숙(가명·56) 씨는 2002년 세상을 떠난 딸 민정(가명·당시 23세) 씨를 아직도 '예삐'라고 불렀다. 사고로 찢겨 나간 다리로 사는 것보다 자식의 흔적을 가슴속에서 도려내는 것이 이들 부부에겐 더 힘겨운 일이었다.
◆행복한 가장, 다리를 잃다
이달 13일 대구 달서구 상인동 자택에서 만난 최 씨는 다리 대신 손으로 몸을 끌었다. 그에게 손은 곧 다리였다. 최 씨는 1981년 1월 1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경남 진주에 갔다가 대구로 오는 길이었어요. 현풍 휴게소가 바로 눈앞이었는데."
눈이 펑펑 쏟아졌던 새해 첫날 최 씨의 차가 미끄러져 중앙선을 넘었고 마주 오던 승합차와 정면 충돌했다. 뼈가 으스러진 왼쪽 다리는 허벅지까지 절단했다. 오른쪽 다리 치료를 위해 두 달에 한 번 받는 수술은 지옥 그 자체였다. 결국 그는 두 다리를 잘라내고 3년 만에 병원을 나섰다.
그래도 최 씨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가 못하는 것은 딱 두 가지, 등산과 달리기예요. 형광등도 내가 휠체어를 타고 교체합니다."
사고 전만 해도 최 씨는 건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골재채취업을 하며 가정을 책임졌던 최 씨. 사고를 당한 뒤 1984년 조류 사육 사업에 뛰어들었다. 대구 달성군 하빈면 인근에 있던 처남 소유의 땅을 빌렸다. 농장 설계와 용접도 휠체어를 타고 최 씨가 직접 했다. 3천300㎡(1천여 평) 규모로 꿩과 공작, 오리 등을 키웠다. 야생동물 사육이라는 사업이 생소했던 그 무렵 큰 성공을 거뒀다. 하루에 100만원을 벌 때도 있었다. 당시 99㎡(30평) 규모 아파트 한 채 값이 1천만원 안팎이었으니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던 셈이다. 돈이 된다는 입소문이 돌자 전국에 야생동물 사육업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경쟁자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거래처도 줄어들었다. 그래서 중장비 대여 사업으로 전환했다. 건설업계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왕래한다는 것은 생소한 일이었다. 수주를 위해 거래처에 들어서면 수십 개의 시선이 그의 다리로 향했다. 편견이었지만 최 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음에 오라'는 말을 들은 적도 여러 번.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초교생이 된 아이들 밑으로 들어갈 학비며, 생활비는 오롯이 최 씨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내 다리보다 더 귀한 딸이었는데"
최 씨는 2월 22일을 달력에서 지우고 싶어했다. 서울에 공부하러 갔던 딸이 23세의 인생을 마감한 날이었다. 2002년 그날. 갑작스런 사고 때문이었다.
"최민정 씨가 사망했습니다."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아내 김 씨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겨우 정신을 차려 찾아간 서울의 한 병원. '내일 대구에 가겠다'며 마지막 통화를 한 뒤였다. 주검으로 돌아온 딸의 모습을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최 씨 내외는 딸의 사인을 알 수 없다는 사실에 더 고통스러워했다. 딸의 시신은 홍익대 인근 다리 밑에서 발견됐다. 소지품도 없었다. 부검을 해도 내장기관이 심하게 파열됐다는 것 외엔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었다.
딸의 친구들은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며 서울 시내 곳곳에 플래카드를 붙였다. 최 씨 부부도 전단지를 뿌렸다. 수개월간 진실을 알아내려 애썼지만 끝내 드러나지 않았다. 경찰도 미제 사건으로 수사를 끝냈다.
"애교가 참 많았어요. 그래서 잘 잊혀지지 않네요."
'엄마, 아빠 사랑해'라며 수시로 전화를 걸었고 부모님 생신은 물론 결혼기념일까지 꼬박꼬박 챙기는 딸이었다. 평범하지 않은 아버지의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만큼 철이 든 맏딸이기도 했다. 강했던 아버지도 딸의 죽음 앞에서 하염없이 무너졌다. 중장비 대여 사업을 접은 것도 이 즈음이었다. 오로지 딸을 그리워하고, 또 그 흔적을 지우는 데만 몰두했다. 딸이 죽고 여덟 번째 겨울이 찾아와도 마찬가지였다. 딸의 사진을 모아둔 서랍장엔 먼지가 앉았다. 딸의 죽음 이후 8년, 부부는 서랍장을 한 번도 열지 못했다.
◆부부를 덮친 병마
아내는 얼마 전 왼쪽 시력을 잃었다. 당뇨 합병증 탓이었다. 죽은 딸을 그리워할 시간은 있어도 몸을 돌볼 여유는 없었다. 세월의 무게만큼 병도 늘었다. 아내는 지난해 8월 다리에 있는 혈관을 떼어내 심장에 연결하는 '관상동맥우회술'을 받았다.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암까지 덮쳤다. 위암 수술까지 받았다.
최 씨도 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3년 전부터는 반 토막 난 그의 다리가 수시로 공중으로 튀어오른다.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은 뒤 이유 모를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최 씨는 "팔다리를 자르고 싶은 고통"이라고 했다.
올해 8월 최 씨는 차상위계층에서 탈락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아들 민호(가명·28) 씨가 최근 구미의 한 공장에 취업해 한 달에 150만원가량의 월급을 받게 되면서부터다. 500원 하던 약값은 20만원이 됐다. '복지 규정'은 냉혹했다. 평생 병원을 끼고 살아야 하는 최 씨 부부의 처지와 생활비 때문에 떠안은 빚 8천만원은 반영되지 않았다.
아내 김 씨는 얼마 전 15층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다. 죽은 딸을 따라가기 위해서였다. 무서운 병원비가 이들 부부의 목을 옥죈다면 김 씨는 또 몹쓸 결심을 할지도 모른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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