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유근택 전시회
창밖으로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 새벽 안개가 피어오른다. 늘 똑같은 풍경이지만 창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은 매번 다르다. 한국화가 유근택은 아파트 발코니에서 바라본 풍경을 계절별로, 시간대별로 스케치했다. 먹으로 그린 풍경은 때로는 또렷하게 정오의 햇살을 보여주는가 하면 비오는 아침의 아스라함을 보여준다. 암흑에 가까운 풍경, 조명이 환하게 켜진 밤 풍경 등 시시각각 그 표정을 달리하는 풍경을 24시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그의 '하루' 연작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그 풍경을 통해 일 년을 살아낸 기분이 든다.
작가의 그림은 주로 일상에 초점을 맞춘다. 아파트의 창문, 바다 풍경, 집 안의 모습을 먹과 호분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그림에는 작가만의 울림이 있다. 집 안의 일상적인 풍경을 그린 그림 화면 가득히 붉은 꽃을 덧입힌다. 작가는 "일상이 결국 꽃이 지고, 꽃이 피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눈이 내리는 숲의 전경도 인상적이다. 화면 가득 서정성과 쓸쓸함이 감돈다.
그는 그림을 통해 사회적인 시선을 드러낸다. 와인과 고급 음식이 차려져 있는 화려한 식탁. 평화로워 보이는 그 식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폭탄이 터지고 전운이 감돈다. 마치 정치의 이면을 드러낸 듯한 식탁의 풍경은 유려한 붓놀림과 함께 상징성을 드러낸다. "6자 회담처럼, 평화와 화려함을 가장하고 있지만 실은 그 속에 여러 가지 정치적 음모와 술수가 있잖아요. 그림을 통해 그런 의미의 비유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한국화라는 형식을 통해 시간의 소멸 등을 보여준다. 조개 껍질을 빻아 만든 채색 재료인 호분의 느낌도 독특하다. 먹과 어우러져 강렬한 느낌을 준다. 사람들은 포착하고 싶은 한순간을 카메라로 찍지만 그는 재빠른 필력과 발달된 감수성을 통해 그림으로 그려낸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일상적이되 리듬감 있고 독특하다.
현실보다는 관념 속 상징이 겹쳐진 듯한 일상적인 물건들, 집안의 풍경을 리듬감 있게 나타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회는 31일까지 갤러리 분도에서 열린다. 053)426-5615.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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