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지식인의 良心

입력 2010-12-06 10:56:52

대공황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본주의가 인류의 미래를 보장하는 체제가 될 수 없다는 신념을 갖게 했다.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은 이런 신념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며 그 대안은 공산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공황 이후 미국의 '뉴딜 시대'를 '붉은 30년대'라고 하는데 유럽도 예외가 아니었다.

'좁은 문'의 작가 앙드레 지드도 마찬가지였다. 콩고 여행을 통해 식민주의의 탐욕과 그것이 낳은 참상을 목격하면서 1932년 공산주의로 전향했다. "공산주의에 대한 나의 신념은 종교에 대한 신념과 비슷하다. 그것은 인류 구원의 약속이다. 그 약속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라면 나는 주저 없이 내 생명을 버릴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신념은 1934~35년 소련을 방문하면서 환멸로 바뀌었다. 그가 본 소련의 실상은 '소련에서 돌아와'라는 여행기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이렇게 소련 기행의 소감을 말했다. "공산주의 땅에선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전락(轉落)한다. 인간성, 도덕성, 종교와 자유의 말살이란 비극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자기부정의 고해성사에 대해 당시 소련의 실상을 보지 못했거나 알고도 모른 체했던 지식인들은 "지드가 파시스트에 매수됐다"며 거친 비판을 쏟아냈다. 당시 지식인들이 지드의 말에 조금만 귀를 기울였다면 공산주의 건설이라는 미망(迷妄)으로부터 인류가 좀 더 일찍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상' 등 많은 저서를 통해 1970, 80년대를 '사상의 전환시대'로 만든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가 어제 타계했다. 그가 제기한 문제의식은 당시 이 땅을 지배했던 냉전 논리를 뒤집어엎으며 80년대를 사회과학의 시대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했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도록 했다. 그러나 '지식인의 양심'이란 측면에서 양심적이지 못했다는 비판도 함께 받는 것도 사실이다. 냉전 반공 이데올로기라는 우상을 비판하기 위해 사회주의를 새로운 우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엄청난 희생을 낳은 중국 문화혁명에 대해 "웅장한 인간 개조의 실험, 인간 제일주의, 보다 깊은 민주주의"라고 찬양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이에 대해 그가 잘못을 인정하는 학자적 양심을 보여줬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앞으로 역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할까.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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