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출신 엘리트 판사, 추리소설 작가로 '외도 중'
"아빠, 요즘 바람피우지? 빨리 말해!"
지난 1월 어느날, 도진기(43)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은 느닷없는 딸의 추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주말인데도 쉬기는커녕 부엌 구석에 앉아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는 모습이 초등학생 딸에게는 영락없이 '아빠의 인터넷 불륜'으로 비친 모양이었다.
사실 그는 '외도' 중이다. 늦바람이 쉽게 잦아들지 않을 것도 같다. 현직 판사 신분이지만 소설가로서 추리문학 붐을 일으켜보겠다는 꿈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9월 미스터리 소설 시리즈인 '어둠의 변호사'(들녘 펴냄) 1·2권 '붉은집 살인사건'과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을 동시에 출간했다.
"현직 판사가 추리소설을 낸 건 처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추리문학의 인기가 우리보다 훨씬 높은 일본에도 없고요. 덕분에 과도한 관심을 받는 것 같아 조금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도 판사는 올해 '계간 미스터리' 여름호에 실린 단편 '선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의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하며 정식 데뷔했다. 이후 장편 출간 권유를 받고 1·2권을 낸 데 이어 현재 3권을 집필 중이다. 반응도 뜨겁다. 출간 두 달여 만에 각각 5천 부 이상이 판매됐으며 중국 출판사와도 번역 출판을 협의중이다. 영화로 만들어보자는 제의도 이어지고 있다.
"1·2권이 실제 사건 같은 느낌이 나는 리얼리티 중심이었다면 3편은 소설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선보일 생각입니다. 셜록 홈즈 같은, 대표적 한국형 캐릭터를 만들겠다는 욕심도 있고요. 처음에 쓸데없는 짓 한다고 구박하던 아내도 이젠 팬이 됐습니다."
학창 시절 추리소설과 무협지에 푹 빠졌던 그가 직접 소설을 써보자고 마음먹은 건 지난해 서울고법에서 헌법재판소로 파견나오면서부터다. "1시간 거리인 출퇴근을 지하철로 하니 책 볼 여유가 생기더군요. 몇 달 새 100권 넘게 추리소설을 읽었는데 뛰어난 작품도 있었지만 단순히 외국 작품이란 이유로 번역된 책들도 있었습니다. 나도 이 정도는 쓰겠다 싶은 생각과 함께 일본을 이겨보겠다는 오기가 생겼지요."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은 판사 출신 변호사. 모델이 자신 스스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솔직히 말해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작품 속 사건은 철저한 픽션입니다. 판사라는 직업이 공개되는 게 부담스러워 필명을 써볼까 고민도 했지만 굳이 뒤에 숨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별다른 취미가 없는 게 글쓰기에 매진할 수 있는 이유라고 했다. 골프도 안 치고, 술자리도 그리 즐기지 않으니 평소에 아이디어를 메모해 뒀다가 주말에 글 쓸 여유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글을 잘 쓰려면 다독(多讀)·다작(多作)·다상량(多商量)해야 한다는 말이 있죠. 제 경우엔 습작은 많지 않았지만 판결문을 10년 넘게 쓰면서 논리가 갖춰졌다고 봅니다. '캐릭터가 좀 약하다'는 평은 저를 반성하게 만들지만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는 독자들의 칭찬은 저를 춤추게 하지요."
대구 토박이인 도 판사는 대구교대 부설 초교, 경상중, 대구고, 서울대 법대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최고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 판사에 소설까지 잘 쓰는 '엄친아'로만 보였지만 '팔불출'(八不出)의 '끼'도 있었다. "제게 글솜씨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딸이 판타지 소설을 곧잘 써요. 그걸 보면 문학의 피가 흐르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들고…. 하하하."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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