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12월이 가기전에

입력 2010-12-03 07:52:46

워킹맘으로 364일 살았는데…"여보! 하루만 휴가 좀 줘"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원고지 3~5장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패션 아울렛 올브랜 10만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김경희(대구 북구 읍내동)

다음 주 글감은 '김장'입니다

♥음악감상실서 '외박' 한번 더…

한 해가 저문다는 것은 한 살을 더 먹게 되는 일이다. 그때 한 살을 더 먹게 된다는 것은 나에게 20대에서 30대로 들어서는 일이었다.

시집가라, 시집가라 그러는데 맞선도 들어오지 않는 가슴 황량한 20대의 마지막 달, 하필이면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얀 눈꽃송이가 펄펄 내리던 날, 맘에 두고 있던 나이 많은 총각이 말도 없이 결혼해버렸고, 단짝이던 친구마저 몰래 데이트를 즐기다 결혼을 선포하여 나를 울렸던 그해 12월, 아픔이라도 덮어주듯 눈은 오리털 이불같이 가볍게 나를 덮어주었다.

그래도 마음이 썰렁해 동성로 거리를 배회하면서 결혼하기 전 꼭 하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그것을 저지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엄마 기준으로는 '나쁜 짓'이 분명한데도 그 나쁜 짓을 한번 저지르고 싶었다. 언제나 착한 딸이었기에 싱숭생숭한 맘을 달래기 위해 나쁜 짓을 했다 하면 넘어가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점퍼 호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몸이 오들오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발길 멈춘 곳이 '행복의 섬'이란 음악 감상실이었다. '외박'하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은은한 불빛 아래 헤드폰을 쓰고 듣는 잔잔한 팝송, 프랑스 샹송을 부르는 나나 무스쿠리의 음성도 감미롭고 이탈리아 칸초네도 들을 수 있었다.

음악의 진수성찬이 차려진 '행복의 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정말로 행복해지는 느낌이 막 들었다. 그 기분이 계속 이어져 이듬해 따스한 봄날, 오리털보다 더 마음이 따스한 남자를 만나 결혼한 지 열다섯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올해는 나 혼자가 아닌 남편과 둘이서 손 꼭 잡고 밤새도록 그 음악을 먹고(?) 싶다. 근데 아직도 '행복의 섬'이 있을라나?

문권숙(대구 북구 국우동)

♥예비사위 권유에 '칠순 여행'

부모님은 동갑. 내년이 칠순인데 5남매 중 혼자 남은 막내딸 결혼을 소원하셨다. 다행히 부모님이 마음에 쏙 들어하시는 예비 신랑이 생겼고, 내년 봄 결혼을 앞두고 착한 예비 사위는 부모님 건강하실 때 모시고 여름휴가를 가자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권해도 "차 밀려서 싫다. 복잡해서 싫다"하시며 막무가내로 거절하셨다. 그래서 마음이 안 좋았는데 10월 초 조용할 때 맛있는 것 사드린다고 했더니, "그 사람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서 자꾸 거절하기도 미안하고"하면서 이번엔 못 이긴 척 따라나섰다.

난생 처음 부모님과의 오붓한 여행길. 영덕에 가 바다 구경도 하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사진도 많이 찍었다. 평소 다정다감하고 배려심 깊은 예비 신랑의 진심이 그대로 전해졌다. 일일이 대게 속살을 빼서 아버님, 어머님, 공주님 하면서 돌아가며 챙기기에 바빴고, 늘 회는 안 좋아한다 하셨는데 회도 맛있게 잘 드셨다. 이제 알고 보니 회는 가격이 비싼 편이라 좋아한다 하면 올 때마다 자식들이 부담스러울까봐 그러셨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있었으니 가슴이 찡하니 눈물이 났다. "자네 보니 이제 우리 막내딸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하며 흐뭇한 표정으로 너무나 행복해 하셨다. 포항 죽도시장에 가 은빛이 눈부신 물 좋은 갈치도 샀다.

돌아오는 길에 늘 허리가 아파 고생하는 우리 엄마, 일흔의 연세에도 목수일에, 농사일에 투잡을 하시며 월급날엔 꼭 딸들에게 한턱 쏘시는 멋있는 우리 아버지께 망년회 겸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라고 12월이 가기 전에 온천 여행을 약속드렸다. 좀 더 편안하게 모실 수 있게 감동적인 이벤트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그렇게 좋아하실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더 행복해 하시던 부모님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김미화(대구 달서구 송현2동)

♥10분의 여유로 맞는 훈훈한 송년

12월, 올 한 해가 '한 달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려 노력해도 자꾸만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올해 내가 꼭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었을까. 12월 한 달간 꼭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연초에 계획했던 외국어 공부, 다양한 독서, 마음 수양 등은 지금 시작하기에는 시점이 애매하다. 아무래도 내년 계획으로 이월시켜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그냥 시간 흐르는 대로 두면 12월은 너무 빨리 지나갈 것 같다.

나는 솔직히 올 한 해 열심히 살아왔다. 그런데 뭔가. 통장 잔고는 작년보다 더 비어 있다. 그렇다고 업무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것도 아니다. 지혜가 쌓인 것도 아니다. 나는 한 해만큼 늙었고, 더 지쳤다.

나는 12월 한 달 동안 '나는 행복한가' 끊임없이 물어보기로 한다. 그리고 매일매일 '긍정하는 삶'을 사는 연습을 해보기로 한다. 사실 그동안 마음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일상에 쫓긴다는 핑계로 나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들여다보지 못한 것이다. 정작 중요한 건 마음인데 말이다.

며철 전 내가 후원하는 말라위의 한 아이에게서 카드가 왔다. 아프리카 초원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는 해맑은 미소가 있었다. 국제구호를 받을 정도면 얼마나 가진 것이 없겠는가. 하지만 그 아이는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초등학교 3학년이라는 그 아이는, 마치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의 미소를 갖고 있었다.

나에게도 좋아하는 음악,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잠깐의 여유, 일기를 쓸 수 있는 10분의 시간만 있으면 충분하다. 진심으로 행복한 2011년을 맞이하기 위해 이 정도의 투자는 아깝지 않지 않은가.

송민정(대구 서구 비산동)

♥하루라도 내게 휴가 주고 싶어

12월이 다 가기 전에 꼭 하루 나 자신에게 휴가를 주고 싶다. 1년 364일을 열심히 살아왔으니 아무것도 생각 안 하고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 같다.

두 아이의 엄마로, 내조하는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 회사원으로 해야 할 일들은 늘 산더미같다. 나에게 하루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혼자는 심심하니깐 나와 마음 맞는 친구와 가까운 온천이 있는 깨끗한 호텔에 1박 2일간 다녀올 것이다. 물론 조식 뷔페가 포함된 것으로. 온천과 사우나, 찜질방에서 몸을 쉬게 하고, 가벼운 수다로 마음을 쉬게 하며, 무겁게 이고 지고 살아왔던 무게감 있는 것들을 내려놓고 실컷 웃고 싶다.

20대 시절의 뭐든지 될 것만 같던 자신감도, 30대 시절의 조심스럽던 기대감도 이젠 사라지고 지금처럼 살아도 될까 하는 두려움이 더 큰 나이가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하루를 쉬다 보면 또다시 재충전의 기회가 되어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보다 유용한 미래를 준비하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이며 나 자신에게 휴가를 줘야 한다는 정당한 이유를 나열한다.

"여보! 나 하루만 갔다 올게. 하루만 좀 내 자리를 대신 채워줘!"

정인경(대구 서구 내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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