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통] 춤과 영화

입력 2010-12-02 07:40:15

최근 들어 여러 차례 무용 공연을 보았다. 예전에는 몸짓으로 표현되는 무용이 그리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시키며, 내면의 깊은 맛이 우러나왔다.

영화 속에서도 무용은 주인공의 속내를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중요한 매개로 이용되고 있다. 스페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2002년)는 독일 무용가 피나 바우쉬의 공연으로 시작하고, 끝도 맺는다.

영화가 시작하면 무대가 나온다. 말쑥한 넥타이 차림의 남자가 있고, 무대 위에는 나무 의자와 탁자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헐거운 잠옷을 걸친 두 여자가 나타난다.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눈을 감은 채 애처로운 모습으로 무대를 방황한다. 말쑥한 양복 차림의 남자가 그들이 가는 길에 막힌 의자를 치워준다.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그녀들이 움직이는 동선에 따라 우당탕탕 길을 열어준다.

피나 바우쉬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무용가 중 한 사람이다. 연극과 무용의 경계를 넘나드는 '무용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무용 작품에서 연극적인 대사를 구사하고, 무대 장치도 지나치게 추상적인 것을 벗어나 일상용품들로 구성했다.

앞에 언급된 것은 1978년 초연된 '카페 뮐러'. 그녀의 어린 시절 기억을 토대로 만들었는데 제2차 대전 패망 당시 네, 다섯 살이던 바우쉬는 카페 테이블 밑에 기어들어가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다. 어린 그녀의 눈에 비친 어른들은 화가 나 있거나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고함을 지르며 의자를 던지는 이들도 있었다. 바우쉬는 독일 패망으로 느끼는 분노와 절망의 감정을 무용으로 풀어낸 것이다.

독일 여성 감독 도리스 되리의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2008년)에는 일본 현대 무용 '부토'가 나온다. 부토는 '무도'(舞蹈)의 일본식 발음이다. 부토는 일본 전통 예술인 가부키와 서구의 현대 무용이 만나 탄생한 아방가르드 무용의 한 장르다. 고전적인 가부키와 달리 형식이 자유롭다. 발가벗거나, 머리도 박박 깎아 전위적인 느낌을 주는 춤이다. 그러나 그 정서는 일관적으로 슬픔과 절망, 상실을 담고 있다. 2차 대전에서 일본의 패망 후 허무주의를 춤으로 그려낸 것이다.

테일러 헥포드 감독의 '백야'(1895년)에는 세계적인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와 미국 흑인 탭댄서 그레고리 하인즈가 나와 구소련과 서방,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발레와 대중 춤을 대비시켰다. 동토의 땅에서 벌어지는 둘의 춤은 모든 이념과 사상, 계급과 인종의 갈등을 넘는 감동적인 매개물로 사용됐다.

우리말 중에 가장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한 글자로 되어 있다. 숨, 옷, 삶, 밥, 집, 물, 불처럼 말이다. 그런데 춤도 한 글자다. 그만큼 삶에서 중요하다는 말일까.

김중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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