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체코의 프라하에 갔었다. 잘사는 독일에서 기차로 넘어오니 느낌부터 달랐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공장 건물은 산뜻한 독일의 그것에 비해 남루했고 프라하 역사도 좀 우중충했다. 프라하 시내를 거닐 때 고풍스런 옛 건물은 감탄을 자아냈지만 거리 곳곳에서 왠지 모를 빈곤의 기운도 감지됐다. 유명한 카를 다리에서 거리의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했고 관광객과 행인들이 이를 느긋하게 감상했다. 카를 다리 주변 거리에서 여인들이 전단지를 건넸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광경에 흥미를 느꼈다. 우리나라처럼 식당이나 상품, 술집을 광고하는 내용이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어느 어느 카페에서 오늘 저녁에 실내악 연주회가 열리고 바이올린 연주회가 열린다는 내용이었다. 러시아나 체코,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국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는 어렵게 살진 몰라도 문화예술을 사랑한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한 끼 밥을 소박하게 먹은 후 저녁에는 크고 작은 공연을 보고 즐기며 생활 속에서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그들의 삶이 부럽게 느껴졌다.
우리도 생활 속에서 문화예술을 즐기면 좋겠다. 대구에는 크고 작은 공연이나 전시회가 끊임없이 열리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문화예술과는 거리를 둔 생활을 하고 있다. 대구에 문화예술 애호가들이 적진 않지만 공연장이나 전시장엔 가는 사람들이 가는 경우가 많다. 문화예술 애호가들의 저변이 넓지는 않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부담이 되는 관람료 때문일 수도 있겠고 바빠서 시간이 잘 나지 않는 경우도 있겠다. 문화예술 쪽에는 취미 없으니 담 쌓은 사람들도 있겠고 먹고 살기 바쁜데 뭔 배부른 소리냐며 타박할 수도 있겠다.
사실 대구는 문화예술적 전통에 자부심을 가질 만한 도시이다. 미술대학과 음악대학 학생들이 많고 뛰어난 화가들과 음악가들, 연주자들이 많다. 구한말 이후 근대의 여명기부터 서병오, 이인성, 이쾌대 등 걸출한 서화가, 화가들을 많이 배출했으며 박태준, 현제명 등 훌륭한 음악가들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의 현대미술 운동이 태동된 곳도 1970년대 대구였다. 대구가 오페라 축제를 열고 뮤지컬 페스티벌을 열면서 '공연 중심 문화 도시'를 표방하고 이인성 미술상을 제정해 시상하는 것도 다 그런 배경 때문이다.
문화예술의 훌륭한 생산자들을 많이 낳고 있으니 문화예술의 현명한 소비자(애호가)들도 많이 길러야 한다. 날카로운 심미안과 귀를 가진 수준 높은 문화예술 애호가들이 적지 않으나 문화예술을 즐기는 이들의 저변은 더 넓어져야 한다. '공연 중심 문화 도시' 등 대구시의 하드웨어적 정책 못지않게 소프트웨어를 소중히 여기는 작업도 필요한 것이다. 대구시와 교육청 등 각종 기관, 기업 등이 문화예술의 저변을 넓히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사실 그런 긍정적인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다. 대구학생문화센터나 수성아트피아 등에서 청소년'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거나 대구예총에서 벌이는 '예술 소비 운동'이 그러한 움직임 들이다. 여기에 더해 좀 더 다양한 정책과 운동 등으로 문화예술 애호 인구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화예술을 향유하면서 삶을 즐기는 것 못지않게 필요한 것이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것일 게다. 칠곡군이 인문학 축제를 열어 주목받고 있지만 인문학적 소양은 삶의 자양분이 된다는 점에서 무척 중요하다. 균형적이고 열린 사고를 하고 통찰력을 기를 수 있다는 점에서 인문학적 소양은 무시될 수 없다. 기업들도 그런 점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원하고 있다. 인문학 강좌에 참여해 보고 생활 속에서 한 권의 책이라도 가까이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역시 개인과 단체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하겠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대구가 '컬러풀 대구'라는 시 브랜드를 내세우고 있는 것은 좀 역설적인데 그만큼 대구 사람들도 이제는 다채로운 패션을 받아들이고 다양하고 열린 사고를 해야 할 시점이며 그래서 문화예술과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김지석(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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