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성의 오지를 달리다] 다이아몬드 울트라 레이스 참가기<2>

입력 2010-12-01 08:04:23

참가자의 20% 이상이 여성이다.
참가자의 20% 이상이 여성이다.
혼자서 설원을 누비는 시간이 많다.
혼자서 설원을 누비는 시간이 많다.
선두권의 속도는 상상을 불허한다.
선두권의 속도는 상상을 불허한다.
유지성과 유카코의 역주 모습
유지성과 유카코의 역주 모습

대회 마지막 날 아침,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라디오 일기예보 방송에서 현재 기온이 영하 26℃이며 날씨는 맑고 화창하다고 한다. 영하 26도? '풋' 이젠 그냥 웃음만 나온다. 영하 40도를 경험해 보니 영하 26도는 왠지 따뜻한 온실로 느껴진다. 얼마나 추웠으면 온실 이야기까지 나왔겠는가.

그저 대자연 속 오지를 달리는 게 좋아 무작정 먼길 날아온 유지성, 유카코, 미호. 그렇지만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이곳 현지인들에겐 탈락 1순위로 보여지던 뭔가 2% 부실했던 우리들. 하지만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끝까지 버텼기에 그 투혼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감동을 선사한, 어느덧 대회 마스코트처럼 자리를 잡은 아시아 좀비 3인방. 마지막 출발선에서 준비하는 동안 지난 5일간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져 보인다.

대회 출발부터 추위에 대한 적응은 둘째고 장비 고장으로 인해 맨 후미에서 필사적으로 싸웠고, 결국 탈진에 탈진을 거듭한 후 기절까지 했던 나. 아침에 출발해서 다음날에야 캠프에 도착했던 황당한 레이스. 밤이 깊어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황에서 환상적인 오로라의 안내로 무사히 길을 찾았던 첫날 레이스.

첫날 문제가 생긴 스노 슈즈가 결국 완전히 분해되어 포기를 하려고 했던 상황. 하지만 주최 측의 만류로 억지로 길을 가야만 했던 둘째 날. 그 무리한 후유증으로 인해 아침부터 계속 구토에 시달렸던 3일째 레이스. 이틀간 거의 제대로 음식을 못 먹고 오로지 물과 정신력으로 버텼던 고난의 시간. 대회 뉴스를 본 많은 마을 사람들이 우리의 투혼에 감동받았다며 응원을 나와서 놀랐던,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어버린 4일째 아침. 하지만 좋았던 기분도 잠깐이었다. 호수를 건너는 코스에서 추위에 정신을 못 차리고 결국 또다시 살기 위해 앞만 보고 걸었던 하루였다. 고생한 대가인지 적응이 끝난 5일째는 처음으로 밝은 대낮에 여유롭게 캠프에 도착을 해서 휴식을 맘껏 즐겼던 제일 평안했던 하루였다.

2002년 사하라부터 시작된 나의 오지 레이스는 지금까지 총 16번의 완주로 이어졌다. 그동안 아프리카, 남미, 북미, 남극, 아시아 등지에서 달리며 많은 이들을 만나고 함께 울고 웃으며 남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아주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남들은 일생에 한번 할까 말까 한 오지 레이스에 꾸준하게 도전을 해서 완주하는 힘의 원천은 역시 즐겁게 살고자 하는 마음가짐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시작과 동시에 기본 필수 장비인 스노 슈즈가 망가져 버려 무릎까지 오는 눈 속을 헤치며 나가다 탈진해 기절하고, 스키 고글에 낀 서리가 얼어버려 고드름이 달리기까지 했다. 또 급체로 50번 넘게 구토를 하며 대회 중 이틀간 아무것도 못 먹은 일에다 처음 3일간 매일 밤 12시쯤 골인하다 보니 제대로 휴식도 못 취하고 다음날 또 고생하는 반복된 나날을 보냈다.

영하 40도의 추위를 뚫고 온몸이 하얗게 얼음으로 뒤덮여도 마음속 어디엔가 즐거움을 품고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

나는 이번 대회에서 내가 초창기 사막에서 만난 몇 수를 앞서가는 진짜 고수들을 우연히 만날 수 있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만난 프랑스의 제라드와 대화를 나누며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됐다.

"제라드, 왜 요즘은 사막 레이스에서 얼굴 보기 힘들어요?"

제라드가 말한다. "나는 이제 규모가 크고 상대적으로 쉬운 레이스보다 작으면서 특색 있는 좀 더 어려운 대회를 찾아다녀. 지난 몇 년간 세상의 구석구석 안 가 본 데가 없지. 이제 자기도 더 깊은 오지를 찾아가야지. 앞으로 나를 만나려면 그곳으로 와."

사실 제라드가 말한 그곳이 어디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들은 무수히 많다. 그것이 꼭 오지가 아니더라도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은 지뢰밭을 건너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 길을 건너본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곳에는 새로운 미래와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서 본의 아니게 7㎏의 급속 다이어트를 완성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아름다운 오로라를 감상하며 달렸다. 이전까지 완주했던 다른 오지 레이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생한 대회였지만 그 누구보다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방정식을 찾았다. 그래서 그 행복의 결정체를 '하이-크레이지'라는 책에 고스란히 담을 수 있었던 소중한 대회였다.

세상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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