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서현양돈단지 구제역 발생
"새끼 돼지가 잘 커야 그동안 빚진 사료 값을 갚을 수 있는데…. 구제역이라니.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29일 돼지 구제역 확진 판정이 난 안동시 와룡면 서현리 서현양돈단지에는 돼지 사육 농민들의 탄식소리가 가득했다. 자식처럼 아끼며 기르던 새끼 돼지가 살처분되는 현장을 바라보던 한 농민은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이기도 했다. "다 큰 돼지와는 달리 새끼 돼지를 살처분하면 5만~6만원밖에 건지지 못합니다. 사료 값도 안 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어 망연자실한 심정이지요."
이날 오후 양돈단지 진입로 초입부터 통제초소를 설치하고 외부 차량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던 방역당국은 날이 어둡기 시작하자 축산 농가와 군인, 안동시청 공무원 등 100명을 동원해 살처분 전담반을 구성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살처분된 돼지는 소독처리한 후 양돈단지 인근 뒷산에 굴착기로 땅을 파고 묻었다. 밤새도록 진행된 살처분 작업은 이튿날 정오가 돼서야 겨우 끝이 났다. 돼지들이 없어진 빈 돈사는 폐허와 다름없는 황량한 분위기였다.
안동 서현양돈단지에서는 이달 26일 오후 한 축산 농가가 "새끼 돼지가 사료를 먹지 않는다"는 신고가 접수되면서 구제역 태풍이 몰아쳤다. 경북가축위생시험소의 현장 간이키트 검사에선 구제역 음성 판정이 나왔으나 축산단지 내 이웃 양돈 농가에서도 같은 증세를 보이는 돼지가 나타나면서 축사 관리자와 돼지에 대한 이동제한 조치가 내려졌다. 28일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가 가동되고 양돈단지 입구엔 통제초소가 설치돼 소독을 시작했으며 29일 오후 농림수산식품부가 구제역 양성 판정을 긴급 발표했다.
방역 당국은 지난 5월 충남 청양의 한 돼지 사육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7개월여 만에 또다시 안동지역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자 비상이 걸렸다. 역학조사팀과 초동 방역단이 29일 오후 현장에 급파돼 구제역 발생지역으로 통하는 모든 도로를 차단했다. 특히 차량이 구제역 전파 매개체가 될 수 있어 철저한 방역을 위해 살균제를 분무기로 살포하고 있으며 사람도 장화를 살균제에 소독해야만 드나들 수 있다.
우선 살처분 대상 가축을 양돈단지 내에서 사육 중인 1만4천500두의 돼지로 국한시키고 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양돈단지 반경 10㎞ 이내의 소·젖소·돼지·염소·사슴 등 5만여 두의 우제류를 추가 살처분할 예정이다.
당국에서는 살처분된 돼지에 대해 돼지 생체 시세대로 쳐서 보상을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피해 농민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1년에 두 번을 출하해야만 겨우 사료 값을 충당하고 인건비라도 건질 수 있는데 한참 투자 중인 새끼돼지를 살처분하면 사료값 건지는 것도 어렵다는 것이다. 빈 돈사에 다시 모돈을 입식해 새끼 돼지를 길러 출하할 때까지는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피해 양돈 농가들은 이번 구제역 사태로 부도만 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라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또 이번 구제역 파동이 돼지고기 소비 둔화로 이어질까 전전긍긍하며 걱정하는 분위기이다. 밤낮으로 키운 돼지 5천여 마리가 살처분 대상이 된 농민 김모(50) 씨는 "사료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구제역이란 벼락까지 맞아 막막한 심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안동·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고도현기자 dory@msnet.co.kr
※구제역이란=구제역(口蹄疫)은 소, 돼지, 양, 염소 등 발굽이 갈라진 동물들에 발생하는 전염병이다. 구제역에 걸린 동물은 입술, 혀, 잇몸, 콧구멍, 발, 젖꼭지 등에 물집이 생기는 동시에 다리를 절고 침을 흘리며 식욕을 잃고 젖이 나오지 않게 된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감염되지 않고 감염된 고기를 먹어도 영향이 없는 질병이다.
소는 높은 발생률에 비해 폐사율이 낮은 반면 돼지는 유사산, 자돈의 폐사, 성돈의 보행장애 등으로 피해가 크다. 특히 돼지는 소에 비해 100∼1천배가량의 병원체를 배출해 전파력이 매우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0년 3월 경기 파주에서 처음 발생했다. 이후 2010년에는 1월과 4월 경기 포천, 인천 강화 등에서 17건이 발생했으며 우리나라는 2010년 9월 27일 세계동물보건기구(OIE)로부터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획득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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