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쓸쓸해서 머나먼' 어느 시인의 이야기

입력 2010-11-30 07:44:52

일조량이 줄어들고, 서늘한 기운이 옷자락을 파고드는 계절이면 슬며시 마음이 우울해진다. 최근 몇 년 새 나타난 갱년기 증세가 아니다. 가을만 되면, 남들이 말하는 '가을을 탄다'는 그 느낌이 온몸과 마음을 휘감는다. 가을이구나 싶으면 이 계절성 우울감은 유행성 독감처럼 곁에 와 있다. 다행히 매일 소화해 내야 할 일과들이 24시간도 부족할 지경이라 우울감을 가둬둘 겨를 없이 하루가 가버린다. 이제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들 알게 모르게 자신만의 병을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쪽 다리에 찾아온다.' 최승자 시인의 시를 읽으며 보냈던 허무와 우울의 1980년대가 내게도 있었다. 이십 년쯤의 세월이 흐르고 문득, 그녀가 '살아있다는 것'에 관한 '루머'를 들었다. 오랜 기간 동안 정신분열증을 앓아왔고, 입퇴원을 거듭했다는 소식이었다. 11년을 투병 생활해 오던 그녀가 새로운 시집을 냈다는 반가운 소식도 덧붙여졌지만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모든 것을 허무로 보았던 정신세계를 지탱해 줄 절실한 그 무언가를 그녀는 발견한 것일까?

사람과의 관계가 참 부질없는 것이라 여겨 그 시인은 홀로 자신의 짐을 지고자 했는지 모른다. 사람인지라 육체에 질병이 생기고, 때론 그것이 불치의 병이 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정신 역시 병이 찾아오기도 하고 때론 그것이 불치의 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정신'에 관한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조금만 더 관대하다면, 그녀는 스스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오랜 유배 생활을 보내고 자기가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온 그녀는 이제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되었다고 한다.

데카르트 이후로 우리 세계는 끊임없이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는 이원론적 생각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정신과 육체, 선과 악 등 상반된 두 개념이 끝없이 대립하는 것으로 보는 뿌리 깊은 신념들은 쉽게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정신'적 질병에 대한 편견 역시 벗어버리기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아직은.

오늘도 우울함을 살짝 덧입은 심리 상태를 적당히 버무려낼 나의 적절한 행동을 기대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한때, 많은 젊은이들의 전설이었던 그 시인의 아름다운 복귀를 축하해 주고 싶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갈 그녀와 국가의, 그녀와 시의 '쓸쓸해서 머나먼'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김지애<인지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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