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다만 공의(公義)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正義)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라."
기원전 760년께 활동하면서 히브리 종교의 윤리적 성격을 분명히 했고, '정의의 예언자'로 유명한 아모스는 당대 지배계층에 날 선 화두를 던졌다. 형식적인 종교의식에만 정성을 쏟지 말고 일상에서 정의를 실천하라는 의미였다. 아모스 시대의 이스라엘은 권력자의 횡포, 가진 자의 사치와 방탕, 성도덕의 붕괴, 뇌물의 만연, 법 집행 비리 등으로 얼룩진 사회였다.
2천800년 가까이 지난 한국사회에서 '정의'가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삼청교육대로 상징되는 제5공화국의 '정의사회 구현'도 한 시대를 풍미했다. 지금은 그때의 서슬 퍼런 '정의'와 다르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주창할 즈음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원제 Justice)란 책이 국내에서 돌풍을 일으키면서 사람들이 '정의'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이 책은 국내에서 인문서적으로는 8년 만에 처음으로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고 한다. 더욱이 이 책은 베스트셀러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어렵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칸트, 벤담, 롤스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정치철학을 폭 넓게 다루고 있어 비 전공자들에겐 용어조차 낯설다.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독자의 지적 호기심이나 지적 허영이 시너지 효과를 냈기 때문만은 아닐 게다. '정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갈망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린 것으로 풀이해 본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쳇바퀴에 갇혀 사람들의 머릿속에 잊힌 정의가 다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샌델 교수는 "정의에는 도덕적 미덕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덕적 미덕은 기계적 행동이 아니라 실천적 지혜를 습득해 얻을 수 있어야 하며, 실천적 지혜는 '선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의 이성적이고 진실한 상태'라고 규정했다. 샌델 교수는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인류 전체에게 무엇이 이로운지 심사숙고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관해 다양한 이론과 사례를 제시하면서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그가 말한 정의를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려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정도로 책읽기의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책을 읽는 동안 '과연 우리사회에서 정의는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우리는 도덕적 미덕을 갖춘 정의를 실천하고 있는가? 정의로운 사회는 약자와 빈자를 배려하는 사회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우리 시대의 지배적 흐름인 시장과 시장 친화적 사고가 전통적 삶의 영역과 약자를 피폐(疲弊)시키고 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노동자에게 납품 단가와 인건비 인하를 직'간접으로 요구하면서 중소기업들을 성장의 수단으로 여겨왔다. 영세상공인과 소기업이 97%에 이르는 대구를 비롯한 지방의 경제구조에서는 이런 관행이 지방경제 불황의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의 생존권을 앗아가면서 '소비자에게 좋은 상품을 손쉽고 싸게 공급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지역자금 역외유출의 통로이며, 이는 지방경제가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대형마트들은 대구에서 올 들어 9월까지 1조 2천500여만 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지역 은행에 맡겨둔 평균 잔액은 매출액의 0.1%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어디 돈뿐인가? 지역 인재들의 수도권 유출도 심각하다. 요즘 같은 입시철만 되면 지역 대학들은 신입생 유치 문제로 피가 마른다. 지역 학생이 수도권 대학을 선호하는 것을 지역 대학의 '무사안일' 때문이라고 여기면 대학 관계자들은 억울해 하고 답답해 한다. 수도권 대학 진학 열기는 지방대 출신이 대기업에 취직하기 어려운데다 지역에는 대졸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들은 수도권과 지방은 물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개인과 개인의 빈부 격차를 가속화한다. 불평등이 깊어지면 수도권과 지방의 삶, 부자와 가난한 자의 삶은 점점 더 괴리된다. 사회적 불평등은 민주시민에게 요구되는 연대와 공동체의식을 약화시킨다.
김교영(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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