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탄도 버티는데 마취제·그물망이 고작…"도망이 최선책" 우스갯 소리
멧돼지 도심 출현이 잇따르면서 정부가 22일 '멧돼지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정작 소방기관은 멧돼지 쫓기에도 벅차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멧돼지 포획 담당 기관인 소방구조대는 유기견 등을 포획할 때 쓰는 장비를 멧돼지 포획에 이용하고 있다며 "멧돼지가 출현하면 우리도 도망가는 게 최선책"이라는 말까지 하고 있다.
22일 대구 달서소방서 구조대를 가보니 멧돼지 포획 장비는 마취약을 쏠 수 있는 장비와 그물망, 올가미가 전부였다.
구조대 관계자는 "멧돼지 포획을 위해 준비해둔 게 아니라 유기견이나 일반 조수(鳥獸)를 잡기 위해 갖고 있는 장비"라고 말했다.
마취약을 쏠 수 있는 도구는 총, 석궁, 블로건(Blow Gun)이 있다. 하지만 짧은 근거리에서 쏴야 하는 블로건의 경우 멧돼지 포획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알루미늄 막대기에 마취제를 넣어 입으로 불어 쏘는 방식이라 멧돼지의 피하지방을 뚫을 수 없기 때문. 이 때문에 소방기관은 멧돼지 출현 신고를 받으면 실탄을 가진 경찰과 수렵협회 등 관련 기관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
실제 이달 4일 대구 달서구 월성동 아파트단지에 등장한 55㎏ 암컷 멧돼지는 월성동 일대를 휘젓고 다니다 발각된 지 4시간 후에 사살됐다. 달서소방서 관계자는 "당시 블로건 3대를 쐈지만 멧돼지가 워낙 날뛰어 맞힐 수 없었다"며 "피하지방이 두껍기도 했지만 멧돼지가 흥분한 상태에서는 마취제가 통하지 않아 경찰에 실탄 발사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결국 경찰이 권총 실탄 4발, M16 실탄 2발을 쏴 멧돼지를 사살했다.
현장에 출동했던 대구 달서경찰서 경찰관은 "멧돼지가 머리에 실탄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고 20여 분 더 테니스장을 배회했다"며 "5m 거리에서 총을 쐈지만 쉽사리 죽지 않았다"고 했다.
소방관들은 멧돼지 처치 관련 규칙이나 지침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경북소방본부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멧돼지 대처 지침은 따로 없다"며 "정부가 멧돼지와의 전쟁에 앞서 포획장비 및 대처 지침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22일 멧돼지 기동포획단 구성, 광역수렵장 설정 등 '야생멧돼지 관리 개선대책'을 발표했지만 환경단체들은 "멧돼지들의 잇단 도심 출몰은 개발 등으로 서식지가 훼손되는 등 환경 파괴에 따른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라며 "수렵 등 인위적으로 개체 수를 조절하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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