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나폴레옹 군대의 나무칼

입력 2010-11-22 10:51:52

나폴레옹이 암행 사찰을 나갔다. 군대 내부의 기강이 흐트러지고 심지어 총이나 칼을 술집에 잡혀 놓고 외상술을 마신다는 보고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밤 왁자한 술집에 변장을 한 나폴레옹이 들어섰다. 홀에는 병사들과 취객들이 뒤섞여 흥청망청이었다. 시시덕대던 병사 하나가 칼을 꺼내 술집 아가씨에게 건네는 걸 목격했다. 술값으로 맡긴 것이다. 나폴레옹은 그 병사의 소속과 이름을 몰래 알아낸 뒤 이튿날 연병장에 비상소집을 걸었다.

전날 밤 칼을 잡혀 먹은 병사는 군장을 챙기다 칼이 없어진 걸 알고 술이 확 깼다. '이젠 죽었다'며 사색이 된 이 친구는 재빨리 뭔가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잠시 후 연병장에 줄을 섰다. 연단에 오른 나폴레옹이 어젯밤 그 병사를 불러 세운 뒤 부관에게 불문곡직하고 '저 녀석의 칼을 뽑아서 목을 치라'고 명령했다. 나폴레옹의 속셈은 어차피 빈 칼집이니 목 잘릴 일은 없고 외상술 사연만 들통 나도록 한 뒤 군기(軍紀)를 호통치려 했던 것이다. 부관이 병사의 칼을 빼내려는 순간 무릎이 꿇린 병사가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하느님, 저에게 죄가 없다면 내 칼이 나무칼이 되게 해주소서.'

그와 동시에 칼을 뽑아든 부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칼집에서 뽑혀 나온 칼은 시퍼런 군도(軍刀)가 아니라 정말 나무로 깎은 나무칼이었던 것이다. 병사가 빈 칼집에 연습용 나무칼을 대신 집어넣고 나온 것이다. 못 말리는 기지(機智)에 어이가 없어진 나폴레옹이 호령했다. '부대 해산!'

약간은 지어낸 얘기겠지만 무기 관리, 기강, 명령 체계가 총체적으로 흐트러져 있는 우리의 육해공군, 학교, 정치판을 떠올리게 하는 일화다. 전투기는 공중에서 떨어지고 바다의 군함은 어뢰 한 방에 맥없이 가라앉고 땅위의 육군은 개울물에 빠지고 천문학적인 세금으로 만들었다는 장갑차는 엉터리 설계로 뜨자마자 물에 가라앉는 군대, 명령을 어겨 보트가 뒤집히는 등 명령 체계가 안 서는 군대, 이게 무슨 G20 국가의 군대냐는 불신과 불안이 터지고 있다. 영국에 패한 나폴레옹 부대의 나무칼 얘기와 다를 바 없다.

말로는 강군(强軍)의 요건이 사기라고들 말한다. 원론은 물론 그렇다. 그러나 막상 전선에서는 첨단 무기의 화학적, 물리적 화력(火力) 우열이 전세(戰勢)를 좌우한다. 인류 전사(戰史)상 거의 모든 전쟁과 전투에서 승자는 대부분 무기의 우열과 군기(軍紀)에서 결정됐다. 청동기와 철기의 전환기 전쟁들이 그랬고 경량 무장의 칭기즈칸 군대와 중세 유럽의 철갑옷 무장 군대와의 승부도 그렇다. 조총에 밀린 임진왜란의 패배나 2차 대전의 원자폭탄도 무기의 승부였다. 부실 무기의 열세에 국기(國紀)까지 흔들린다면 그 나라나 군대는 바람 앞에 선 촛불이다.

곳곳에 수요 예측을 헛짚은 민자(民資)도로나 뚫어 수십조(兆) 원의 돈을 외국 투자회사에 갖다 바치면서도 낡은 전투기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는 나라, 후원 공돈 먹는 데 정신이 팔린 채 특검, 대포폰 싸움으로 날 새는 나라, 이 총체적 기강 해이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한마디로 무서운 구석이 없어서다. 큰어른과 얼차려 정신과 강한 법치, 철학이 없어서란 얘기다. 체벌 없앤 학교에는 교육자가 조롱받고, 기합 없는 군대서는 연일 떨어지고 가라앉고, 정치판에선 돈 먹고도 되레 큰소리치는 것, 그게 다 무서운 구석이 없어서다. 매 들고 기합 주는 것만이 옳다는 얘기가 아니다. 체벌도 기합도 못하게 해놓고 매를 들지 않는 것과 엄한 기율(紀律)을 두고 매를 들지 않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도처에 나사를 다 풀어놓으니 사회 조직 곳곳에서 속으로는 나무칼을 꽂아놓고 빈 칼집 흔들며 어흠하는 못된 증후가 나타나는 것이다. 아직은 들어야 할 매는 매섭게 들어야 할 때다. 이대로는 옳은 무기, 조직 체계의 기강, 교육 윤리의 위계, 법치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설 리 없다. 그러다 보면 계속 떨어지고 빠지고 삐걱댈 수밖에 없게 된다. 더 늦기 전에 국기(國紀)부터 다시 추스르자. 나무칼로는 썩은 짚단 하나도 제대로 못 벤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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