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거부해야 할 대학평가

입력 2010-11-22 07:39:17

대학 등급, 절대진리 될 수 없어, 서열화 오류 개선할 방법 찾아야

얼마 전 어떤 신문사에서 발표한 대학 평가 결과를 보고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평가 결과는 대학의 등급으로 나타났는데 그 등급이란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대학 서열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은 한국 사회의 병폐인 대학 서열화를 언론사에서 공식적으로 확인해 준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서열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굳이 어렵게 조사, 평가를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

생각해 보시라. 대학의 서열은 국민 모두에게 내면화되어 있다.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처음 알게 된 사람이 있다 치자. 우리는 먼저 그 사람의 출신 대학을 묻는다. 그리고 대학의 이름을 듣는 순간 틀림없이 그 사람의 사회적 등급이 뇌리에 떠오를 것이다. 떠오르지 않으신다고? 그럼 그 사람은 아마도 등급 외의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대학의 서열이 개인에게 내면화되어 있는데 무엇 때문에 굳이 언론사에서 나서서 대학 평가를 하는가?

대한민국에서 대학의 우수성을 결정하는 데는 몇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다. 첫째, 대학의 서울 소재 여부, 둘째, 대학의 기득권(예컨대 이미 확보한 우수한 대학이란 사회적 평가, 혹은 명성) 소유 여부, 셋째, 앞의 두 가지 조건을 이용해서 동원할 수 있는 인적, 금전적 자원의 규모 등이다. 대한민국의 권력과 경제력, 문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자리가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으니 우수한 학생들은 서울로 진학하기 마련이다. 서울 아닌 지역에 소재하는 대학은 이미 점수를 깎아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이미 사회적으로 우수한 대학이란 평가를 얻은 대학은 그 명성과 선후배 관계 등이 재학생과 졸업생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한다. 이런 대학일수록 기업이나 동문 선배가 내는 발전 기금이 많이 몰린다. 사립 대학일 경우 등록금도 높다. 그러니 학교의 시설과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의 운영에 많은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상의 세 가지 조건이 대학의 등급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만약 어떤 대학이 위의 세 가지 조건을 하나라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을 경우, 그 대학은 교수가 아무리 노력한들, 대학의 행정 당국이 아무리 분발한들, 대학의 등급을 끌어올리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요컨대 대한민국의 대학은 언론사가 나서서 애써 평가할 필요가 없다. 대학 순위는 이미 결정되어 있으며 그것은 앞으로도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 중위권 이하 대학이 엎치락뒤치락해 보아야 대한민국 국민은 오직 앞쪽 순위에만 관심을 두니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문제를 내는 사람과 푸는 사람이 있다 하자. 누가 권력을 쥐는가. 당연히 문제를 내는 사람이 권력을 쥔다. 문제를 내는 사람은 정답을 가지고 있으며 답안지를 거둔 뒤 그 정답에 따라 채점하고 평가한다. 답안지를 낸 사람은 끽 소리도 못하고 그 평가를 받아들일 뿐이다. 한데 대학 평가란 시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답이 단 하나로 정해져 있는 수학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여러 방식으로 낼 수도 있고, 따라서 답도 여럿일 수 있다. 어떤 응시자에게는 가중치를 줄 수도 있다. 이치가 이러하니, 언론사에서 하는 대학 평가 결과가 절대 진리가 될 수 없거늘,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 대학들은 언론사에서 하는 대학 평가에 목을 매기 시작했다. 문제가 제대로 출제된 것인지, 어떤 의도로 출제된 것인지, 따지지도 않고 답, 곧 자료를 가져다 바치기에 바쁘다.

대학은 수많은 지식인들이 있는 곳이다. 언론사보다 수십, 수백 배나 더 많은 지식인이 있다. 언론사의 대학 평가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한 마디 항변도 못하고 그저 시키는 대로 내부의 구성원을 닦달하면서 자료를 만들어 바친다. 그리고는 예상했던, 혹은 예상치 못했던 평가를 받고 한숨을 지으니 이런 바보 같은 일이 없다. 우습기 짝이 없는 이 일을 그치게 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모두들 그런 얼토당토않은 평가를 거부해 버리는 것이다. 이 사회와 수많은 대학에 간절히 바란다. 언론사의 평가에 목을 매지 마시라. 그보다는 대학 서열화의 오류를 끊임없이 지적하고 그것을 개선할 방법을 찾는 데 노력을 기울이기를 바란다.

강명관(부산대 교수 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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