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성장 동력이 되는 시대가 왔고, 이를 위해서는 스토리텔링, 문화 콘텐츠가 중요하고, 선점 효과가 있다 하니 설익은 축제 중심의 콘텐츠만 양산되고, 지속성이 없어 하드웨어는 흉물로, 소프트웨어는 불온해지기 십상이다. 언젠가부터 지역 간 균형발전이라는 구호도 '니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는 유행가 가사처럼 유리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책임을 져야 할 시점에 이르면, '잊어줘서 고마워' 하고 묻혀버리거나, 오묘한 '정치적 해법'으로 풀려 버리는 것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기도 하고, 또, 어떤 일을 두고서는 적당하게 잊어버리는 편이 낫다. 높은 기억력은 괜한 어지럼증만 유발할 뿐이다. 그저께 일어난 지구촌의 비극도 쉽게 잊어버리고, 듣기 좋은 꽃 노래도 세 번째부터는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에 오감(五感)을 만족하는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와 중계자, 게다가 정책 개발자까지 4인 5각으로 펼치는 레이스의 완주 확률은 시간이 갈수록 낮아질 뿐이다.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문화 소비자로서, 문화 중계자로서 눈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할 일들이 의외로 많다. 참여하지는 않더라도, 감시와 격려의 시선, 그리고 기대와 우려의 시선을 동시에 던질 수 있는 그런 일들을 기억해보자.
먼저,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을 보고 나서, 내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문화행사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대구시는 시민들에게 객관적으로 더 나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어야 할 숙제가 생겼다. 그리고, 대구국제오페라 및 국제뮤지컬축제는 국비지원 문제에 난관이 예상된다는데 걱정이다. 예산 지원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하고, 직접 지원에서 기금공모 사업으로 지원 방식이 바뀌게 되면 사업의 계속성과 안정성이 떨어지는데 이는 '온실을 뛰쳐나오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하여 '쓰는 문화'에서 '버는 문화'로 가야한다는 절박함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요즘 대구예총이 의욕적으로 벌이는 문화 소비 운동도 기대 반 우려 반이다. 문화 소비자에게 여든까지 갈 좋은 버릇을 키워주는 효과가 제일 중요한 거 같다. 그동안 만연했던 초대권 문화는 떠나보낸 지 오래다. 일부 기업과 단체들의 참여는 체면 반, 홍보 반이었겠지만 대체로 적극적이다. 그런데, 수요와 공급이 순리대로 되지 않아 역작용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생산자를 따르자니 소비자가 울고, 소비자를 따르자니 생산자가 우는 격이다. 그야말로 구인난과 구직난을 동시에 겪고 있는 셈인데, 참 어려운 문화 계몽 시대의 길라잡이 노력에 큰 박수를 보낸다. 또 쉽게들 이야기하는 문화예술 분야의 일자리 창출도 타 시도와 외국의 사례를 학습하지 않으면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구호만으로는 결코 일자리가 생겨나지 않으므로 기업의 문화에 대한 지원은 더욱 체계를 갖추어야 할 것이고, 문화에 대한 투자는 투기가 되지 않도록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일부 지원 사업으로 인해, 개인과 단체 간에 반목하고, 형제애를 나눈 듯했던 지자체 간에도 불협화음이 터져 나오고, 심지어 종교계도 서로의 세 불리기로 이어져 보는 이를 답답하게 한다. 이들을 통합할 수 있는 언론은 '균형과 공정'을 이유로 잘 나서주지 않지만, 뒤에서는 깨어진 거울 맞추기를 하며, 잃어버린 반쪽, 만만한 반쪽을 찾고 있다는 것쯤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다.
오늘 이 시간에도 가치 있는 토종 콘텐츠는 많은 이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거나, 분명 어렵게 태어나 자라고 있을 것이다. 시간을 거스르면서까지 성급하게 문화의 전쟁터로 내몰 수는 없다. 그 뻔한 경쟁력을 가지고 어쩌란 말인가. 누군가 '배려 없는 문화는 폭력'이라고 표현했듯이, 지켜낸다는 의미의 그 배려로서 눈 크게 뜨고 잠들지 않아야 한다.
최근 대구문학관 건립 소식을 듣고, 다시금 지역 문화의 힘과 맛을 보여줄 때가 된 것 같아 기대 만발이다. 작은 일이나마 제대로 회향할 때까지 그 누구라도 '물 인 계집 입 맞추고, 옹기장수 작대 치는' 놀부 심사는 발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정학(천마아트센터 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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