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이다. 71만 2천여 명의 수험생과 학부모가 오늘 하루를 위해 쏟은 시간과 노력, 희망과 절망, 웃음과 눈물의 양을 생각해 보면 오늘만큼 무게 있는 날도 흔치 않다. 수능시험을 떠올리면 늘 휘청거리는 교육 정책을 원망하게 된다. 30, 40년 전에 있었던 중'고 평준화에 이어 졸업정원제, 예비고사 폐지, 수능시험으로 이어진 정책의 목적은 오로지 '사교육 잡기' 하나였다. 그러나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사교육은 점점 늘어나,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지는 예측조차 할 수 없다. 사교육 잡기가 아니라 차라리 공교육 살리기에 정책의 초점을 맞췄으면 최소한 지금처럼 광란의 전쟁터는 안 됐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요즘 교육계의 화두인 '체벌 전면 금지'도 이와 비슷하다. '때려서는 안 된다'가 먼저인데도 학생 지도의 편의를 이유로 용인하다 보니 이제 그 문제가 터진 것이다. 이에 대해 반대 여론이 많다. 체벌만큼 빠르고, 확실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가벼운 체벌을 포함해 체벌이 불가피하다는 응답자가 67.7%였다. 하지만 이 결과는 체벌에 대한 찬성이 아니라 체벌이 주는 상징성에 대한 동의로 이해한다. 체벌이 두려워 규칙을 잘 지킬 것이라는 상징성이다.
이 여론조사의 결과는 '아이는 맞으면서 자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많은 남성은 학교나 군대에서 선생님이나 상급자에게 맞은 것에 대해 화를 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생각한다. 세월이 많이 흘러 아픔이 희석되거나 잊혀서가 아니라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한 자양분이 됐다고까지 생각하는 이도 있다. 폭력을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폭력에 대한 향수가 있으니 체벌의 필요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어른 세대와 확실히 다르다.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개성이 강해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강제하기가 쉽지 않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세태가 그렇다. 이 단점을 거꾸로 보면 적극적이며, 자기 성취욕이 강하다는 장점이 된다. 이렇게 바뀌었는데도 사회는 아직도 수십 년 전의 유물인 체벌로 아이들을 통제하니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다.
집에서 아이를 부르면 "왜요?"라고 대답한다. 듣기가 거북해 어른들이 부르면 '예'라고 하든지 '부르셨어요?'라고 대답해야 한다고 가르쳐도 아이는 영 못 알아듣는 눈치다. 몇 명의 교사가 있는 모임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요즘 학교에서 아이들을 부르면 대부분 '왜요?'라고 답한다고 했다. 버릇없게 들리는 '왜요'가 이미 공식 대답이 됐다는 것이다. 아직도 아이가 '왜요?'라고 하면 슬그머니 화가 치밀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문화려니 하며 그냥 넘어간다. 사소하지만 이런 문화 충돌은 곳곳에 있다. 체벌 금지를 찬성하는 성명서를 내고, 연애 금지 학칙을 고쳐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요즘 아이들이다. 학생=공부라는 등식을 가진 기성 세대로서는 못마땅하지만 우리가 우리 부모와 부딪쳤을 때 느꼈던 세대 차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체벌 금지에 대한 대안은 마땅치가 않다. 가정에서 교육을 잘 시키고 학교가 더 노력해 세대 간 간극을 줄여야 한다는 판박이 대답 정도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요즘 부각되는 교실의 난맥상은 체벌 유무와 그리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 자고, 떠드는 학생은 체벌이 폭행 수준이었던 수십 년 전부터 있었다. 체벌 금지로 인해 요즘 폭주하는 현상으로 오도하면 안 된다.
체벌 금지에 따른 대안 찾기는 '체벌은 절대로 안 된다'는 전제에서 논의해야 한다. 교육 정책이 '사교육 잡기'가 아니라 '공교육 살리기'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과 같다. 지금 우리는 일의 선후를 바꾼 대가를 무시무시하게 치르고 있다. 다소간의 혼란이 있더라도 그동안 체벌이라는 옛날의 잘못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 대가도 빨리 치러야 한다. 다만 선생과 학생이라는 갑 대 을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라는 갑 대 갑의 입장에서 논의를 시작한다면 그 후유증을 최소화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鄭知和(논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