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대형마트] ④홀대받는 지역기업

입력 2010-11-18 09:10:31

중소업체 입점 '바늘구멍'…들어가면 가격 후려치기

유통 대기업들이 지역 기업을 외면하면서 대구경북의 경제가 갈수록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대구에서만 연간 1조5천억원, 전국적으로 수십조억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지역의 돈줄을 남김없이 빨아들이고 있지만 이들이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부분은 그야말로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 이들이 창출하는 고용은 비정규직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지역 금융과 지역 기업들이 만들어내는 제품은 외면받기 일쑤다. 지역은 말라붙어버린 자금줄에 허덕이고, 무너져내린 자영업자들의 신음소리만 높아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유통 대기업에 '지역'이라는 단어는 존재하는가?

◆만들어도 판로가 없다

대구에 공장을 두고 있는 한 제조업체 대표 A씨는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대형마트 입점을 시도했지만 결국 높은 문턱만 실감하고 포기해야 했다. 알음알음으로 지역 마트 관계자에게 부탁을 해 봤지만 "납품 관련 업무는 본사에서 하는 일이니 서울로 문의해보라"는 답변만 들었다. 하지만 서울 본사로 찾아가도 담당자를 만나기조차 힘들었다. "담당자가 출장 중이니 제품을 놓고 가면 나중에 연락을 주겠다"는 말에 결국 제품을 두고 돌아섰지만 연락 한 통 받지 못한 것이다.

지역 기업들은 "아무리 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낸들 판로가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제품의 판로가 대형마트와 SSM에 집중되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판매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식품업체 사장은 "동네 슈퍼를 통해서라도 판매를 하려고 발품을 팔아보지만 소비자들이 '대형마트에서는 판매하지 않는 중소업체 제품'이라며 외면하는 까닭에 또 한번 설움을 겪고 있다"며 "대형마트의 문턱은 넘어서기 힘들고, 그렇다고 이곳에 입점하지 못하면 다른 판로조차 점차 입지가 좁아지는 실정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대형 유통업체들은 물품 구매가 본사에서 일괄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개별점포가 나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어 지역 제품을 외면하고 있다.

더구나 입점을 했더라도 대기업의 벽을 넘지 못해 구석으로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다 일부 대형마트에서는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할인행사를 진행하면서 업체 쪽에 과도한 출혈을 요구하고 있어 '이중고'를 겪어야 하는 실정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난해 대전시로부터 우수상품으로 선정된 대전의 한 제조업체 대표 A씨는 대형마트 입점을 포기했다. 소비자들에게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선 대형마트가 좋다고 판단해 입점을 시도했으나, 계약단계에서 번번이 무산됐다. 마트 측에서 지나치게 낮은 공급 단가를 요구함에 따라 수수료와 운영비를 제외하면 적자가 날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A씨는 대형마트 대신 중소기업청이 운영하는 쪽으로 판로를 개척했다.

◆지역은 외면

대구시가 지난 7월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쇼핑프라자 등 지역의 대형마트 17곳을 대상으로 '대형마트 지역 기여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원 급여 이체 등을 위해 지역의 금융회사에 예치한 대형마트들의 평균 잔액은 30억원에 불과했다. 지역 기업 및 농가를 돕기 위해 매년 늘리기로 했던 지역 생산품 구입액도 4천38억원으로 2008년 4천187억원보다 149억원이 오히려 줄었다.

농산물도매시장 중도매상인들은 대형마트가 지역 청과나 채소는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낮은 가격만 중시할 뿐 지역 농산물에 대한 고려는 없다는 지적이다. 기를 써서 대형마트에 납품한다고 해도 계약을 계속 유지하는 일이 수월한 일이 아니다. 대형마트에 납품하기 위해서는 법인화와 대형 물류창고를 갖춰야 하는 등 많은 투자가 필요하지만 워낙 가격을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후려치기 때문에 중도매인은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하소연이다. 대구시농산물도매시장 관계자는 "현재 서울의 대형 청과 회사가 부도난 것도 대형마트의 횡포 때문"이라며, "평균 3억, 4억원의 미수금을 중도매인이 안아야 하는데다 결제기간도 보통 45일에서 길게는 두 달까지 걸리는 등 대금 결제마저도 자기들 마음대로 하기 때문에 규모가 작은 지역 기업은 설 자리가 없다"고 푸념했다.

청소나 용역업체 등도 지역 기업이 아니라 외지 업체를 이용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A마트의 경우에는 그나마 119억원의 지역 용역서비스를 이용했지만, B마트의 경우에는 고작 4억5천만원에 불과해 나머지 대다수의 용역서비스를 외지 업체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정은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천안시에 따르면 지난해 천안지역 대형마트들의 총 매출은 3천800억원이 넘었지만, 지역 농·특산품 판매는 전체 매출의 2.1% 수준인 80억원에 그쳤다.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소속 '대형마트 시민모니터단'은 지난 6월 전북지역의 대형마트에서 쌀, 과일, 채소, 계란 등 농산물의 진열 분포를 조사한 결과 지역 농산물 비율이 평균 8%대에 불과했다고 발표했다. 심지어 지난 9월 강원도 춘천시가 시의회에 제출한 행정사무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역 대형마트 5개 점포에 입점돼 있는 지역 생산품은 전체 15만1천152개 중 275개로 0.1%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발표도 있었다.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취재단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