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정상회의가 막을 내렸다.
'오빠, 바라만 보지 말고…'라는 요상한 '오'바'마' 건배사로 망신을 당한 적십자사 간부가 있었다지만 이번 G20에서는 브라질, 러시아, 중국, 인도 등 세칭 BRICs 국가들이 '오빠 이제부턴 바보같이 마음대로 안 끌려다닐 거야'란 '반(反)오'바'마' 건배사로 반기를 들었다.
대표적인 것이 '오바마는 틀렸다'고 한 룰라 브라질 대통령의 거침없는 저항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오빠 마음대로 하라'는 건배사를 했을 법한 브라질이 당당히 '이제부턴 미국 마음대로 안 끌려 갈 거'란 반기를 든 것이다. 그 배경에는 그동안 남미 면적의 47%를 차지한 자원 부국(富國)이면서도 미국의 달러 지배력에 눌려 기를 못 펴다가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7위 문턱에 올라서면서 강국으로 부활한다는 자신감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골이 깊은 브라질 국민들의 반미 정서도 한몫했다.
몇 가지 사연만 예로 들어보면 그런 불신과 반미 정서를 엿볼 수 있다. 세계 최초의 비행기만 하더라도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아니라 자기네들이 더 앞섰다고 믿고 있다. 실제 상파울루 교외에는 당시 인류 최초의 비행에 관한 기념 박물관과 활주로 등 '증거'가 보존돼 있다. 그럼에도 국력이 약하다고 엄연한 과학적 진실조차 무시하고 왜곡시켰다는 불만이다. 우리의 인쇄술이 쿠덴베르크 인쇄에 뒤처졌다고 알려지는 것과도 같다.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은근한 반미 정서가 깔리게 된다. 세계 최대의 아마존 밀림 지역 주변에 석유가 없을 리 없는데도 탐사 기술이 없어 미국 거대 정유 회사에 돈 줘가며 의뢰했더니 공중만 빙빙 헛돌며 수년간 '없다' '없다'며 속여 왔다고도 믿는다. 20세기 후반 유럽에 유학 나간 브라질 젊은 신세대들이 귀국해 들어오면서 갖가지 부존 자원들을 발견해 내기 시작하자 그런 불신과 반미 정서는 더욱 확산됐다. 아마존에서만 난다는 과라나 과즙 음료만 애용, 전 세계에서 인구 대비 미제 콜라 수요가 가장 적은 것도 그런 정서의 표출이다. 거기다 아마존 밀림에서는 강대국 제약 회사들이 몰려와 희귀 약초 군락지를 헤집어 놓고 높은 수익을 빼간다. 재무부장관 같은 경제 부처 책임자는 미국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워온 인물로 임명토록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끼쳐 친미적 경제 정책을 유도한다는 진실과 오해가 뒤섞인 반미 정서도 과거 한때 있었다.
1980년대 후반, 환율이 급변해 브라질 크루제이루(당시 화폐 단위)가 몇 배로 뒤흔들리면서 크고 작은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졌을 때도 미국의 환율 '장난'을 의심했었다. 이번 G20 회의에서 '미국이 달러를 헬기로 쏟아붓는다'며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래도 지난 수십 년간은 급소를 쥐고 있는 미국의 눈치를 봐야 했다. '오빠 마음대로'식 '오'바'마'를 외쳐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 경제의 흐름이 바뀌고 2세 3세 정예 유학 세대에 의해 자원 개발 능력이 두드러지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바보같이 오빠 마음대로 끌려 다니는 굴종은 않겠다는 자신감이 반기를 들게 한 것이다. 각국 정상들에게 '미국 경제가 강해야 세계에 이익'이란 구애 편지까지 보낸 오바마의 면전에서 '당신이 틀렸다'며 콧방귀를 날린 브라질 대통령의 '반오'바'마' 구호를 보며 한가로이 섹시한 건배사 농담이나 시시덕댈 게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다짐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앞으로 더 큰 목소리를 제대로 내려면 한 가지 길뿐이다. '뭉치고 강해져야' 한다. 반미 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강국에도 내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수 있는 자주의 힘을 기르자는 얘기다. 프랑스가 규장각 도서 내주고 일본이 수탈 문화재 반환하는 것, 1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게 다 국력 덕이다. 손님이 가고 나면 당장 또다시 여야가 이전투구 싸움판을 벌일 게 뻔하다. 후원금 돈 먹은 얘기 따위로 집안끼리 파열음을 내는 나라가 세상 바깥을 향해 무얼 큰소리칠 수 있겠는가.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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