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순천만 갈대밭의 상념

입력 2010-11-15 07:26:12

교우들과 함께 순천만 갈대밭을 누비며 갈대가 주는 인생의 의미를 새겨보는 상념의 시간을 가졌다. 곧잘 인간의 모습, 삶을 갈대에 비유하곤 한다. 파스칼은 그의 명상록 '팡세'에서 "인간은 갈대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유명한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가운데 "여자의 마음은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다"는 구절도 있다. 더욱이 성경에 그리스도의 자비와 긍휼을 표현하는 뜻으로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라는 말씀도 있다.

성경은 인간을 가리켜 그냥 갈대라고 하지 않고 '상한 갈대'라고 했다. 갈대가 약하다 보니까 상하거나 꺾어지기 쉽다. 조그마한 바람에도 꺾어지기 쉽고 짐승의 발자국에도 쉽게 쓰러지고 상처가 난다. 인생을 상한 갈대에 비유한 까닭은 바로 인간이 갈대처럼 연약해 쉽게 부러지고 쉽게 흔들리며 쉽게 상하기 때문이다. 비록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가장 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먼저 인간은 육체적으로 갈대와 같다. 인간보다 힘센 동물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보다 더 오래 사는 동물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보다 청각·시각·후각이 발달한 동물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은 질병에 대응할 힘도 한계가 있다. 이른바 세계 4대 영웅이라고 하면 칭기즈칸과 나폴레옹, 시저, 알렉산더를 가리킨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당대 세계를 지배했던 인물들이다. 하지만 또 다른 그들의 공통점은 그들의 영화와 종말은 풀의 꽃과 같고 안개와 같이 너무나 연약하며 보잘것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천하를 호령하던 알렉산더는 30대의 나이에 전쟁에 나가 승리를 거두고 돌아와서 목욕한 뒤 감기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어떤 왕은 여름날에 나무 그늘에서 하품을 하다가 하루살이가 목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인간은 정신적으로 허약한 갈대와도 같다. 시련이 오면 그 앞에 굴복하고 고난이 닥치면 그 아래 짓눌려 버리기 쉽다. 또 좌절과 실망의 심연 속에서 울고불고 한숨짓는 인생으로 마치 창파의 '일엽편주'(一葉片舟·한 척의 조그마한 배)처럼 세상 풍랑에 이러저리 밀려다니는 무력하고 약한 존재다.

인생의 의지도 갈대와 같다. 인간의 의지는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야말로 갈대의 의지다. 이처럼 인생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의지적으로 연약한 갈대이다. 하지만 생각하는 갈대, 자성하는 갈대, 꿈꾸는 갈대, 내일을 개척하는 갈대가 또한 인간이기에 인간은 의미 있는 갈대이다.

대구성명교회 목사·대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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