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도우려, 사내 메신저에 "햅쌀 구입 신청 받습니다"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원고지 3~5매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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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박경주(대구 수성구 지산동)
다음 주 글감은 '독서의 계절'입니다
♥ 햅쌀처럼 구수한 시골 인심
"올해 첫 햅쌀 찧었는데 밥 한번 해 묵어라. 구수할 끼다"하면서 올해 첫 농사로 창고에 둔 가정용 정미기로 햅쌀과 찹쌀을 찧어 한 자루 가득 트렁크에 담아 주었다. 갓 캔 땅콩과 고구마도 포대에 담고 앞개울에서 밤새도록 잡은 골부리 한 사발과 물고기 한 사발도 잊지 않고 비닐 봉지에 담아 준다. 그래도 모자랄까봐 밭에서 따온 햇콩과 무를 뽑아 담아 준다. 사과 포대도 잊지 않고 실어 준다. 이 모든 넉넉한 시골 인심을 아낌없이 풍요롭게 담아 건네는 김달중 부부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 넘쳐흐른다.
청송 인지리에서 사과 따기 일손을 거들었다. 동지 전에 사과를 따야 얼지 않고 긴 겨울 저온 창고에 보관하게 된다. 지난해는 첫서리가 오고 일찍 한파가 오는 바람에 사과를 따지 못한 채 얼게 해 버렸다고 한다. 농촌에 일손이 귀하다 보니 가을이 오기도 전에 사과 따기를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가을걷이는 한꺼번에 몰린다. 벼와 콩 수확하기, 땅콩과 고구마 캐기, 사과 따기 등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보니 늘 일손이 부족하다. 더구나 농촌에는 예순이면 청년이고 일흔 되어야 장년 일손들이다. 그나마 일흔 일손도 귀해 어디 가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고 한다. 많은 농사일들로 인해 아플래야 아플 겨를도 없다면서 밤이면 온몸이 뻐근하고 허리가 아파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끙끙거린다. 그들은 농부의 일을 천직으로 평생을 밭에서 보내고 일하는 재미로 산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람이 먹는 것이니 만큼 누구나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도록 친환경 저농약으로만 농사를 지어야 한다면서 우직스런 고집으로 억척스레 일하는 순박한 시골 인심이 농원 가득 펼쳐진다.
농촌 일은 밤낮이 구분되지 않는 것 같다. 타작하랴 말리랴, 한 톨 한 톨 손이 가는 소중한 생명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귀한 것이 농산물이다. 그래서 농자(農者)는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라면서 가장 소중한 근본으로 여겨 온 우리 조상들이다.
진한 햅쌀 향기가 구수하다. 푸짐한 인심이 묻어나는 햅쌀을 얻어온 인심이 우리 농촌에 살아있다. 맨 먼저 올해 농사를 챙겨 담아주는 인정이 넘치는 인지농원의 초겨울 햇살이 따뜻하다. 우리 농촌이 매우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가끔 동네에 일흔이 훨씬 지난 할머니들이 와서 거들어 주곤 한다. 아마 지금쯤 어느 할머니들이 며칠째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몇 해 전에 그런 고향 같은 마을로 돌아가리라 하고 땅을 마련해 두었다. 농촌으로 돌아가리라. 그 땅심이 있는 곳으로 말이다.
오현섭(대구 동구 신천동)
♥ 쌀 한포대 위에 위로의 마음도 더해
택배 왔습니다. 어느 늦가을 오후, 택배 아저씨가 쌀 한 포대와 상자 하나를 배달해 왔다.
이모님께서 햅쌀과 고춧가루 등을 보내 주신 것이었다. 당시에 아버지께서 수술을 받으시고 몸조리하시면서 일 년 동안 쉬고 계신지라 심적으로 궁색한 때였다. 이모는 우리의 처지를 읽으시고 보내주신 것이었으리라.
우리 형제가 학생이었으니 교육비며 병원비, 생활비에 수입은 없었고 지출은 많았다. 성실하고 검소하셨던 부모님 덕에 경제적인 고통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일 년 동안 수입이 없었고 아버지 병의 완쾌가 불투명한지라 당시 우리 가족은 호흡을 하고 정신이 있으니 살아있는 것이었다. 그런 때 햅쌀 한 포대는 위로의 마음까지 더해졌다.
아버지께서 수술 후 몇 년간 외래 치료를 받으며 마침내 완쾌되셨다. 외롭고 쓸쓸해 보였던 삼라만상은 다시 생기를 찾은 듯 활기차 보였다. 어렸을 때 다녔던 고향에 있는 법흥사란 절에 들를 기회가 있었다. 불쌍한 노인들과 부모 없는 아이들이 많았다. 법인단체로 무료 양로원과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모가 보낸 햅쌀 한 포대가 떠올랐다. 곤궁할 때의 쌀 한 포대는 한 트럭의 쌀보다 값진 것이란 것을,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모금은 배부른 사람에게 진수성찬보다 더 요긴하다는 것을 햅쌀 한 포대가 깨우쳐주었다. 그후로 누군가에게 물 한 모금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매월 조금씩 송금하던 것이 군 입대할 때부터 잊고 있었다. 이 시간, 망각했던 내 마음이 부끄러워진다. 수화기를 들고 (예천연꽃마을) 공오사 육오삼 칠칠일사를 눌러본다.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내 마음이 웃는다.
김욱(대구 남구 대명3동)
♥ 풍년이어도 걱정 흉년이어도 걱정
주말마다 고향에 불려가는 피곤함보다 더 걱정인 것이 쌀값이다. 농지 정리가 되어있지 않아 대형 기계가 들어갈 수 없어 손수 낫질을 하여 벼를 베고 말려서 걷어와 타작을 해야 하는데 일손이 부족하여 주말마다 거들어도 농촌 일은 끝이 없다. 고작 하루 세 끼 찾아드시는 밥때가 되어야 허리를 펼 수 있었으니 어머니 허리는 뒤로 젖혀지지 않을 만큼 반쯤 굽어 있다.
'올해는 농사를 조금 줄입시다'라고 부탁하지만 '그러마'라고 대답하고 땅을 놀릴 수 없다며 경작하신다. 풍년이어도 걱정, 흉년이 들어도 걱정, 비가 많이 와도 걱정, 안와도 걱정, 하나 더 보태어 자식 걱정까지, 걱정이 끊일 날 없는 농촌의 실상이고 부모님의 현실이다.
아직 먹던 쌀이 있다는데도 아버지는 극구 햅쌀 맛을 보아야 한다며 달구지에 수확한 벼이삭을 싣고 읍내 방앗간으로 향하시고, 어머니는 고추, 참깨, 참기름, 들기름, 장아찌, 얼갈이김치 등 한보따리 싸주시면서 혼자 넋두리하셨다.
'쌀농사는 재미가 없어, 식구들 먹을 것만 해야겠다. 이제 뭘 해먹고 살아야 할지….'
그순간 나는 이런 생각이 퍼뜩 들었다. 직원들이 사내 쿨메신저로 부모님께서 직접 수확한 과일을 판매하는 것을 생각해내고 나도 쌀을 판매해보기로 했다. '맛있는 햅쌀 구입 신청받습니다'라고 보냈더니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덕분에 부모님의 걱정을 일부 덜어드리게 되었고 동료들의 따뜻한 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참 좋은 계기가 되었다.
피재우(대구 수성구 만촌3동)
♥ 첫 햅쌀밥 지어 제사 지내
6·25전쟁이 치열할 때 중학교를 다녔다. 오가는 길 사십 리는 벅찼지만 그때 중학교를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자긍심을 가졌다. 누구나 못살았기 때문에 점심 끼니를 굶는 사람이 많았다.
나 역시 부잣집 아들이 아니었지만 논밭 2천 평 안팎의 가난한 농가의 맏손자로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아버지의 슬기로움과 어머니의 규모 있는 살림살이, 할아버지의 별난 소먹이로 학비만큼은 걱정 없었다. 비료가 없을 때라 두엄을 장만하여 농사를 지었으니 풍년 농사는 될 수 없었다. 보리 농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물면 모심기조차 못하는 것이 벼 농사다. 보리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양식이 떨어질 때면 바라는 것은 햅쌀이다. 이 시기는 보릿고개 못지않은 배고픔을 가졌다. 나는 못 먹어서 3학년 때까지 얼굴에 벚꽃이 피었다. 보리밥도 제대로 못 먹던 시절, 어른들은 배고파 우는 아이들이 불쌍하여 언제 벼가 익느냐 하며 하루에도 열두 번씩 논두렁을 밟는다.
한로(寒露) 무렵 벼가 어지간히 익으면 햅쌀을 찧어 햅쌀밥을 짓는다. 처음 지은 햅쌀밥은 신주단지 앞에 정화수를 떠다놓고 촛불을 밝혀 제사지내는 고유를 드린다. 할머니께서는 내게 절을 하라고 하셨다. 무릎 끓고 비는 말씀 "일 년 농사 정성으로 지어 햅쌀밥 올리오니 흠향하옵소서. 모든 복 들어오고 잡귀잡신은 물아래로 썩 물러가게 하시어 내년에는 더 많이 풍년 들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하여 주소서"하며 주문을 외우듯 하셨다. 지금은 쌀이 남아돈다고 하니 격세지감이다.
박효준(대구 달서구 송현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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