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건배사

입력 2010-11-10 10:59:18

'한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로 시작되는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는 권주가의 별미로 꼽힌다. 당나라 시인 왕유의 '송원이사안서' 도 애송되는 권주가다. '그대에게 다시 권하노니 이 술 한잔 들게나. 서쪽 양관으로 가면 술 권할 친구도 없을 것을'로 끝나는 그의 시는 친구와 이별하는 아쉬움을 진하게 전한다. 술이라면 빠지지 않는 이백도 '둘이서 마시노라니 산에는 꽃이 피네. 한잔 먹세 또 한잔 먹세그려'라는 '산중대작'을 남겼다.

글깨나 읽은 옛 사람들은 술과 시를 함께 즐겼다. 기쁠 땐 기쁜 마음을 담고 슬프고 우울할 땐 재기의 희망을 노래했다. 시로 마음과 마음을 전하며 술잔을 권했다. 여염집 사람들도 잔치가 벌어지면 제일 연장자에게 술을 올리곤 권주가를 불렀다. 술 한잔 즐겁게 드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라는 염원을 술과 함께 올렸다.

건배사가 어느새 일상이 됐다.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 모임에서도 건배 구호는 빠지지 않는다. 근사한 건배사 한두 개는 준비해야 낭패를 당하지 않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널리 쓰이는 건배 구호는 '위하여'다. 그러나 잦은 모임만큼이나 건배 구호도 다양해졌다. 여러 단어의 앞 부분을 이어 모은 원더걸스, 진달래, 당나귀, 나가자, 개나리 등이 자주 등장한다.

명사들도 제각각 자신들의 건배 구호를 가진다. '오바마'도 그 중 하나다. 적십자사 부총재이자 대한의사협회장이 이산가족 상봉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오바마를 외치며 단 설명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오빠 바라만 보지 말고 마음대로 해'라는 뜻이라고 토를 단 게 화근이었다. 그러나 오바마를 단골로 외치는 이들은 '오래오래 바라는 대로 마음 먹은 대로 되소서'라는 뜻으로 쓴다.

썰렁한 건배 구호는 되레 자리를 어색하게 만든다. 건배사는 모임의 성격과 모인 사람의 면면에 맞아야 한다. 말은 시간과 장소, 사람에 따라 구별하여 써야 한다. 누가 어떤 이유로 모였는지를 도외시한 썰렁한 유행어로는 대접받지 못한다. 다듬어지지 않은 말이라도 마음을 주고받는 건배 구호에 박수가 쏟아진다. 남이 쓴다고 따라하기보단 자신만의 구호를 가지는 멋을 뽐내 보자. 내 말 한마디로 남을 즐겁게 해 준다면 나에게도 기쁨이 아닌가.

서영관 논설실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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